요즈음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산책을 한다. 날씨도 선선해지고 가을이라 걷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밤과 낮이 교대하는 시간은 온 세상이 고요하고 적막하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손톱 같은 달이다. 달빛이 아삼삼하게 비추는 길을 걸어가면 어두운 사위가 마중을 나온다.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걷다 보면 제천천에 다다른다.
천변에 들어서서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면 동쪽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몸의 세포도 서서히 깨어나면서 고요한 기운을 전달받는다.
천변을 따라 충만해진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걷다 보면 온갖 생각이 태동한다. 나는 저녁보다 아침에 산보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천천에는 자전거 길과 인도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얕은 실개천이 흐르는 천변을 걸어가면 제방 너머에서 단전 치기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힘찬 구령 소리가 들려온다. "하나 둘 셋 넷"을 반복으로 외쳐가며 자신의 몸을 두드리는 소리에 맞추어 걷다 보면 제천천과 방축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른다.
제천천과 방축천은 금강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이다. 물이 합수되는 곳에 다다르면 희미하던 건물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나고 더 넓은 하천이 나온다.
아직은 아침 해가 솟아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밤의 긴 터널을 이어주던 가로등은 갑자기 고개를 떨구며 밤과의 이별을 고한다. 가로등이 갑자기 고개를 떨구면 밤과 낮이 충돌하면서 어두운 세상이 사라지고 밝은 낮의 기운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천변을 따라 동쪽을 바라보고 한참 걸어가면 하늘에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몸의 각종 세포를 팽창시킨다. 새벽에 붉은 기운이 물들면 몸은 선선한 기운으로 채워지고 왠지 모를 은근한 힘이 불끈 솟아오르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낮은 어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밤이 비워준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다. 밤과 낮은 서로 비워주고 채워가며 매일같이 교대하는 낯선 손님이다.
천변 다리밑에 도착해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소슬바람이 비슬비슬 불어온다. 몸에 선선한 바람이 와닿으면 몸에 붙어 있던 더운 기운이 사라지고 몸이 시원해진다.
체조를 마치고 다시 천변을 따라 집을 향해 걸어 올라오면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태양이 하늘 위로 서서히 떠오른다. 동쪽 하늘에 붉은빛을 앞세우고 넘실넘실 솟아오른 태양은 온 세상을 비춰주는 구세주다.
태양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이 그저 세상 누구나 분별하지 않고 온누리에 빛과 밝음을 선사한다. 아침에 태양을 등에 지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출발했던 지점이 나온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새벽에 걷는 것도 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다. 삶이 태어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듯이 아침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일상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도돌이표란 생각이 든다.
새벽, 미명, 어두운 사위, 붉은 기운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낯섦과 신선 함이다. 삶의 소중한 순간은 홀로 걷는 새벽길에 만나는 황홀함이다. 그런 순간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만나는 신명 나는 삶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