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쓴 에세이>
내가 휴전선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때 아빠와 함께 속초로 여행을 가서였다. 속초에서 고성을 지나 김일성이 예전에 사용하던 별장을 구경하고 군인들이 통제하는 통일동산에 올라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휴전선에 대하여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동족 간의 비극적인 전쟁의 산물이란 것과 그 전쟁으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 초·중·고에서 선생님도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통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은 통일에 대한 방법이나 절차에 대하여 깊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직도 내 관념에는 통일은 평화통일이란 막연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관념적인 생각은 아마도 남과 북에서 배우는 학생들 모두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과 북은 모두 통일에 대한 방법이나 절차 등에 대한 깊숙한 내용은 위정자의 몫이다.
우리나라 TV나 라디오나 신문을 보더라도 남과 북이 통일을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와 방법에 따르는 것이 평화로운 방법이고 남북한 모두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절차에 대하여 깊숙하게 다룬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통일에 대한 방법은 남과 북의 모든 국민이 알 수 있었으면 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이러한 평화적 통일에 대한 방법론조차 설정하지 못한 채 통일에 대한 말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통일은 동독과 서독의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방법과 절차에 따라 합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남과 북의 모든 국민이 아는 통일에 대한 방법과 절차란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생각이 일치되는 합의점에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자 따뜻한 봄을 기다렸다는 듯이 산수유, 개나리, 목련 꽃들이 순서대로 피어나 자연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이는 남과 북의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남한이나 북한의 모든 국민은 꽃이 봄의 전령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계절의 순환은 한반도가 역사에 존재하던 순간부터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화로운 기간에는 남과 북 모두 이런 봄날의 애상과 정취를 詩로 읊조리지 않았을까. 봄은 남녘부터 올라와 북쪽을 향해 물결을 치고, 가을은 북녘부터 내려와 남쪽을 향해 파도를 친다.
이렇게 봄과 가을이 남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 한반도를 가로막은 녹슨 철조망이 민족의 응어리를 안은 채 버티고 있다. 오늘도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계절과 바람과 동물뿐이다.
나는 아직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한반도를 가로막은 휴전선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한반도의 주인인 남과 북의 사람들을 분리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주변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휴전선은 때로는 남과 북의 이념의 잣대를 기준으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 강대국들이 이익을 위해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다툼의 선이 되기도 한다.
지금쯤 휴전선의 저문 능선에는 봄의 전령인 꽃들이 한창 피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장벽이 가로막더라도 꽃은 계절을 따라 피어나게 마련이다.
내가 사는 이곳의 벚꽃도 서서히 지고 있으니 봄을 따라 올라간 벚꽃이 휴전선에도 만개하고 있지 않을까? 계절은 자유롭게 이 땅을 이리저리 휘젓는데 사람만은 휴전선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서로 왕래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유럽이 오늘날처럼 평화롭고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된 것에는 국경선을 넘나드는 자유스러움도 한몫했다. 우리는 지금 두 발로 터벅터벅 걸어서 넘어갈 수 있는 국경선이 한 곳도 없다.
삼면이 바다고 남과 북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두 발로 걸어서 대륙으로 나갈 수가 없다. 우리가 다른 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늘과 바다뿐이다. 우리가 외국을 나가거나 여행하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해서 값비싼 대가를 지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휴전선 때문에 북한을 떠나 자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 걸어가서 자유를 찾는다. 아마도 휴전선이 없었다면 더 많은 북쪽의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휴전선은 육로로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까지만 해도 중국이나 러시아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며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고, 중국과 러시아로 통하는 출입이 끊기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웃인 일본마저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한반도에서 하늘과 바다 이외에는 육로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어져 버렸다. 나는 평화로운 통일 이전에 먼저 남과 북의 국민이 휴전선을 통해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휴전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유를 얻게 되면 다음은 중국과 러시아 등 우리 주변국의 나라를 걸어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어떤 것 보다 평화적인 통일의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국경선을 철조망으로 가로막은 것은 처음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팽배했던 시기의 장벽은 단단한 콘크리트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단단한 콘크리트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직도 내가 사는 한반도의 휴전선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우리가 평화 통일을 노래하지만, 휴전선에는 두꺼운 장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답답하고 어둡기만 하다.
그리고 휴전선의 철조망 위에는 주체와 민주라는 이념의 불꽃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북한은 점점 주체사상을 고착시키기 위해 고립정책을 고수하고, 남한은 북한을 달래며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남과 북을 가로막은 철조망은 평화롭게 제거해야 하고 그 철조망의 일부는 후손을 위해 대대로 남겨두었으면 한다. 선조들의 실수를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보존시키는 것이 더 교육적인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평화통일은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국민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통일에 대한 방법과 절차를 정하여 함께 공유하면서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