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이자 수필가인 김춘자 씨가 『그 사람의 풍경』이란 산문집을 내면서 “언젠가 나도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싶다.”라는 소망을 말했다.
멋진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니 작가에게 썩 어울리는 말이다. 작가가 풍경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는 인생의 경륜과 연륜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인생의 완숙한 경지에 이르면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삶의 풍경이 된다. 그런 삶은 누구나 꿈꾸지만, 삶의 완성은 아무나 다다를 수 없다.
요즈음 서점에 시집과 수필집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정작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작가면 누구나 자신이 쓴 글에 풍경이 되고 싶은 소망을 담는다.
독자에게 책을 왜 읽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다. 핸드폰이 일상화된 시대에 독자가 책을 쉽고 편하게 접해서 읽을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
독자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보다 책을 읽기 쉽고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나도 삶의 풍경이 되고 싶다. 삶에 지쳐서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 여유롭고 멋스럽게 살고 싶어서다.
이제는 삶의 뒤편으로 물러나 어우렁더우렁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느린 삶을 살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소망할 것이다.
삶의 풍경은 여유와 낭만에서 나온다. 삶이 스며들지 않은 자연은 경치일 뿐이다. 경치는 미적인 맛은 있지만, 사람의 영혼이 깃들지 않아 진정한 풍경이 될 수는 없다.
삶의 풍경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우라를 뿜어내는 멋스러움이다. 아름다운 노래는 가수의 목소리도 곱다. 시나 소설이나 수필도 마찬가지다.
글이 멋진 풍경으로 다가오면 작가의 마음도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 글은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긴 여운으로 남는다.
글을 쓰는 행위는 그림을 그리거나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풍경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는 그림 속에 자신을 아름답게 그려 넣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자신을 몰입시켜 한 폭의 풍경이 되고 싶은 소망을 말한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없다. 그러니 풍경이 되려면 그림보다 글을 쓰는 행위에 몰입해야만 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글을 쓰는 행위와 같으면서도 다른 영역이다. 어떤 영역이든 자신이 잘하는 것에 빠져들고 집중하면 그 자체가 풍경이 될 수 있다.
화가인 김춘자 씨만 풍경이 되란 법은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 자신이 풍경이 될 수 있다. 단지 그 행위에 얼마나 고고하게 고집과 아집을 부려가며 살아내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나 삶의 풍경이 되기를 갈망하지만, 그 갈망은 아무나 다다를 수 없다. 오롯이 외길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삶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올곧게 외길 인생을 살아오지도 못했고 글쓰기도 아직은 서툴러 풍경이 되려면 한참이나 부족하다. 앞으로 글을 쓰는 외길 인생을 살아간다면 풍경이 되고 싶은 소망은 어느 정도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멋진 풍경이 되어 살아가고 싶지만, 그저 꿈일 뿐이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에서 풍경으로 남느냐 바라보느냐는 본질이 다르다. 삶의 완성은 자신이 생각한 시선과 타인이 인정하는 시선이 일치할 때다.
내가 풍경이 되고 싶은 소망에는 삶의 성숙이란 성장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 오늘도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트북에 손을 올려놓고 삶의 완성을 향한 미래의 자화상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