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말나리

by 이상역

사람은 성장과 소멸이란 자연의 순환에 따라 생명의 대를 이어간다. 소멸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지나온 삶과 뿌린 씨앗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갖게 된다.


사람이 소멸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남긴 씨앗과 삶의 추억이 많다는 증거다. 모처럼 아이들 책꽂이에 꽂혀있는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동화를 집어 들었다.


동화책을 들고 책장을 하나둘 넘기자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 어떤 동화책을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교실 뒤편에 커다란 모눈종이를 붙여 놓고 동화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자기 이름 위에 빨간 색연필로 한 칸씩 칠하도록 했다.


그 시절 교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교실 뒤편의 빨간색 기둥이었다. 어떤 친구는 빨간색 기둥이 연기처럼 솟아올라 교실의 천장까지 올라갔다. 나도 짝꿍이 빌려준 동화책을 읽고 색연필로 빨간색을 칠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곤 했다.


책상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와 흥미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 동화는 부모 중 한 분이 없거나 아예 없는 세 아이의 마음을 다룬 성장 이야기다.


동화는 느티나무가 자라고 보건소와 농토가 있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누구나 겪었을 동심의 마음을 세심하게 다루었다. 부모를 잃거나 이별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밝게 승화시켜 아이들이 성장하는 마음을 배려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에 부모를 잃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식은 부모를 잃으면 산에 묻는다지만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 자식은 부모의 죽음을 시간이 갈수록 잊지만,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잊지 않고 가슴에 또렷하게 새겨둔다.


세월이 순으로 흐르면 자국이 남지 않지만, 반대로 흐르면 자국이 뚜렷해지고 커다란 상처로 남는다. 작가는 인생의 순리와 도리를 은연중에 작품 곳곳에 심어 놓았다.


하늘말나리는 백합과에 속한 나리꽃이다. 보통 나리꽃은 땅을 바라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 핀다. 이 꽃의 상징적 의미처럼 작가는 세 명의 아이들에게 담긴 각각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펼쳤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시골에 내려와 보건소장을 하는 어머니를 둔 소녀 미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조차 없이 할머니가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소녀 소희,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아버지와 사는 소년 바우.


이 세 명의 소년 소녀 이야기를 작가는 동심의 마음으로 하늘말나리라는 꽃에 빗대어 이야기를 펼쳤다. 이 동화의 갈등은 바우 아버지의 꽃다발과 미르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문에서 태동한다.


미르는 이혼한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듣고 혼란에 빠지고, 바우는 어머니를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가 꽃다발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닌 미르 어머니에게 갖다 줄 것이라는 생각에 오해의 갈등은 깊어진다.


미르가 어머니를 따라 시골까지 내려온 것은 아버지와 재혼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고, 바우는 자신이 말을 안 하는 것은 어머니를 잃은 충격 때문이다. 미르 어머니와 바우 아버지가 서로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미르와 바우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에 반해 소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지만, 그들을 위로하며 서로를 이해시킨다. 그런 소희가 바우와 미르에게는 자신들보다 큰 존재임을 깨닫는다.


소희 할머니는 소희에게 인생은 큰 강과 높은 산과 계곡을 넘어봐야 평평한 길이 고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가르친다. 소설이 소년 소녀의 동심을 다루는 내용이지만 인생의 깊이를 다루는 내용이 동화의 곳곳에 깔려 있다.


아이들이 품고 있던 오해의 갈등은 미르가 어머니와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절로 풀린다. 우리 곁에 있는 오해의 바다는 항상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 싹이 자란다.


사람은 자신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익숙할 뿐, 상대방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아 오해의 싹은 깊어진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세 아이를 통해 어른들과 삶의 시선을 좁힌다는 이야기다. 소희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작은아버지와 살기 위해 미르와 바우와 헤어진다.


동화가 느티나무 아래서 시작되었듯이 아이들의 이별도 느티나무 아래서 끝을 맺는다. 서로 보고 싶을 때 느티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언약하는 것으로 작가는 동화를 마무리했다.


동화책을 읽고 나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무가 상처를 입지 않으면 단단해지지 않듯이 인생도 굴곡과 상처와 많은 것을 겪고 나서야 평범한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은 그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겪은 것을 잃거나 떠나보내게 될 때는 애착심을 갖는다. 사람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 속에 성장의 바람과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란 동화는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고 공통적인 분모의 삶을 나누면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늘을 보고 핀 꽃 안에 마음을 담듯이 사람도 몸이라는 그릇에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담고 살아가라는 뜻도 행간에 들어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수많은 시간과 사연을 겪고 나서다.


어찌 보면 이 동화는 작가의 성장 이야기를 재현하여 삶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 쓴 것인지도 모른다.


한창 무더운 계절에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이금이의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동화책 읽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잠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아련한 추억에 풍덩 빠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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