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물러나고 민간기관인 협회에서 2년 근무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서 모처럼 집에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한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아파트 단지 주변을 운동 삼아 몇 바퀴 돌았다.
삶은 어디를 가서 머물든 주변의 환경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가 않다. 내가 둥지를 틀고 사는 곳은 강동구 길동이다. 어쩌다가 송파구 장지동에서 강동구 길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길동과 장지동의 차이는 장지동은 아침에 산책하러 갈 곳이 많은데 길동은 주변에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지만 산책을 즐길만한 공원이나 천이 없다.
장지동에 거주할 때는 장지천이나 탄천의 천변에 나가 걷기를 즐겼는데 길동은 천이 없어 걷기를 할만한 곳이 없다. 이곳에 와서 주로 걷는 곳은 길동에서 상일동으로 가는 천호대로를 걷다가 상일동에서 상일근린공원을 한 바퀴 돌아서 오곤 한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기 마련인가 보다. 주변 환경에 맞추지 않으면 환경에 억지로 적응해야 한다. 길동생태공원은 이른 아침에 문을 열지 않아 생태공원을 산책할 수 없고 일자산 등산로는 아침부터 걷기에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지 않아 꺼리게 된다.
따라서 아침에는 길동의 아파트 단지 주변을 주로 돌거나 해가 뜨면 대로변에 나가 만 여보를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찾아 나선다. 세종에 머무를 때도 아침에 육천여보를 걷고 출퇴근 할 때도 걸어서 다니면 하루에 만보 이상은 걸었다.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되도록 채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산책을 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스트레칭이다. 산책을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거나 어깨나 근육이 땅긴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차를 운전해서 세종에 내려가지 않으니 마음이 참 편안하다. 지금까지 월요일에 아침마다 어디를 가는 것이 목적 아닌 목적이었는데 그 목적이 사라지자 어깨도 마음도 한결 가볍기만 하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그럭저럭 육 개월이 되었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누리는 삶을 하나하나 찾아볼 생각이다. 나는 이사를 어디로 가든 가는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삶이란 내가 찾아서 누리고 해야 할 것이 있으면 당당하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주에 세종에서 올라와 어제 일요일에 가족과 여동생들과 함께 길동의 한 식당에서 생일 음식을 먹었다.
서울 하늘아래 여동생 둘이 살고 있으니 참 좋다. 세 집이서 생일마다 돌아가면서 생일도 축하해 주고 맛있는 음식도 사서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조졸한 모임이지만 의미는 참 깊다. 여동생들과 청주에서 대학에 다니며 자취하던 시절부터 많은 것을 겪으며 살아왔다.
세 가족이 서울에서 모여 살자고 한 것도 아닌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울에 올라왔고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가족들 생일마다 서로 축하해 주고 생일 음식도 함께 먹는다.
이제는 세 가족에 조카들이 결혼해서 손주까지 태어나서 가족이 불어났다. 우리 세대와 자녀 세대가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우리 세대와 자녀 세대는 생각이나 행동 등 많은 것에서 차이가 난다.
가족 중에 누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가족이 함께 만나서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즐겁고 기쁜 일이다. 모두가 고향에 계신 어머니 덕분이지만 그나마 서울에서 여동생들과 누리는 것도 삶의 행복이자 축복이다.
오늘은 아침에 모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니 마음도 상쾌하고 하늘에서 흰 눈이 날리니 기분도 좋다. 지난 2년간 아침마다 서울과 세종을 오고 간 시간을 생각하니 까마득하기만 하다.
내게 무슨 힘이 남아 있어 차를 운전하며 오고 간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런 힘이 어디서 솟아나서 그리 먼 길을 오고 간 것일까. 하기사 모든 일은 내 앞에서 부딪히면 당연히 하게 마련이다. 그런 당연함과 의무가 차 운전대를 잡게 한 힘이 아닐까.
하루의 일상은 잔잔함의 연속이지만 오늘도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거나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착각에 그나마 하루라는 시간을 붙들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해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구름 속에 떠올라서 시간을 따라 서쪽으로 갈 것이고 나도 그에 편승해서 오늘 하루라는 시간의 여정을 따라 태업을 감으로 따라가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