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진눈깨비와 비가 섞여 내리더니 아침의 산책길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판에 몸이 언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짝 긴장하고 조심조심 걸었다.
한발 한발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온 신경이 발끝과 눈 끝에 집중되어 산책하는 내내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걸었다. 이런 날은 걷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것이 더 낫을 듯하다.
오늘 산책은 길동생태공원에서 북으로 직진해서 고덕역을 돌아 명일역과 굽은 다리역을 돌아서 오는 코스다. 인도보다 차도가 더 얼어 조심조심하면서 한 시간 반을 돌아오니 근 만 여보를 걸었다.
겨울에 블랙 아이스인 인도를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내 몸을 위험에 노출시켰으니 잰걸음이 아닌 종종걸음으로 발을 디뎌가며 주변의 경치와 건물을 구경하며 걷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아침 출근시간대라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다녀 걷는 내내 심심치가 않다. 어느 도시나 시내를 걷는 것은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바라볼 것도 많다.
도로 좌우로 서 있는 가로수나 건물의 이름과 간판을 읽어가며 걸어가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력과 활력과 삶이 녹아 흐르는 인심이 정겹게만 다가온다.
지하철 9호선은 현재 중앙보훈병원역부터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기존 도로까지 변경해 가며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 일하는 모습이 분주하다.
도시를 걷는 재미는 작은 골목길을 만날 때마다 다른 차와 사람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골목길과 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신비스럽다.
작은 골목이나 큰 골목길을 지나칠 때마다 차와 사람이 달라지고 그 골목에 깃들어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한 사연과 하얗게 솟아오르는 뿌연 연기를 바라보면 도시의 인정이 느껴진다.
그간 천변을 걸을 때는 만나는 사람도 건물도 없어 심심했는데 도시를 걷는 것은 나름 재미와 흥미가 있다. 그렇다고 도시의 속내를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뚝 선 건물을 바라보면 그곳에서 시작된 삶의 역사와 과정을 대충은 읽어진다.
그리고 도시를 걸어갈 때 불편한 것은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다. 걷는 길 곳곳마다 교차로가 있다. 교차로에서 빨간 신호등을 만나면 정지해서 초록색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신호등은 말은 하지 못하지만 도시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누구나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무단 횡단하면 가차 없이 응징한다. 사람이 만든 법률보다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이 신호등이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초록색으로 변한다. 그러면 곧바로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한다. 신호등은 정지와 멈춤과 방향 전환을 결정하는 전환점이다.
우리네 삶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신호등을 만난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뿐 인생의 과정에서 정지와 멈춤과 직진과 방향 전환을 하는 때가 있다. 그때마다 방향 선택을 잘해야 한다.
신호등은 교차로에만 설치되어 있지 않고 우리 인생의 길에도 설치되어 있다. 그 신호등을 만났을 때 어떤 선택을 하든 올바른 선택을 해서 정지와 멈춤과 방향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
도로에서 만나는 신호등도 같다. 어떤 방향을 가든 가는 목적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길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도시 곳곳에 신호등을 설치한 것은 서두르지 말고 방향을 생각하며 가라는 의미다.
걷는 길 곳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살얼음판을 조심조심하며 무사히 산책을 마쳤다. 인생은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오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 아이스로 다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하루 일과에서 중요한 시간은 출근길이다. 오늘도 인생의 교차로를 만나면 원하는 곳을 찾아가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