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길동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는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다르자 등교하는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어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와 손을 잡고 가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정겹게만 바라보였다.
학생들이 무리를 이루어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인생에서 언제 저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감회와 앞으로 손주의 손을 잡고 등굣길에 언제 가볼까 하는 설렘이 일었다.
요즘 백수라서 일주일에 두 번은 손주를 보러 간다. 손주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손주를 안고 세상을 구경시켜 주거나 점심을 먹고 난 뒤 재워주러 가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손주는 태어난 지 18개월인데 아직은 걷는 것이 어설프고 말도 잘하지 못한다. 그런 손주를 안고 가다 걸어가라고 내려놓으면 아장아장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 이 세상 모든 행복을 가진 듯하다.
그렇게 뒤뚱뒤뚱 뒤태를 보이며 걸어가는 손주와 걷는 것을 두고 밀당을 즐기고 있다. 밀당이란 연인이나 부부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 싸움이다.
나는 손주와 심리 싸움을 하기보다 손주와 대치하고 걸어가게 할 것인가 안아 줄 것인가를 두고 하는 밀당이다. 문정동에 사는 딸네 집에 갈 때마다 손주를 안고 근처 공원이나 이웃 아파트 내 놀이시설을 찾아간다.
그때마다 손주와 밀당을 즐긴다. 손주를 안고 걸어가다 땅에 내려놓고 손주한테 걸어가라고 하면 손주는 뒤뚱거리며 대여섯 발자국 걸어가다 내 앞을 가로막아 선다.
그리고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으니 안아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손주를 안지 않고 손주를 피해 모른 척하고 앞으로 걸어가거나 손주의 양팔을 잡고 뒷걸음질 치며 따라오라고 하면 손주는 징징거리며 걸어온다.
그런 손주가 지난주부터 걸어가다 나를 바라보며 '안아', '안아'라고 말한다. '안아'는 자기를 안아달라는 말이다. 손주도 어느새 말이 하나둘 늘어가는데 '안아'란 말을 누군가에게 배운 것 같다.
손주는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징징거리며 따라오다가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반대로 걸어가거나 '안아'달라는 말을 금세 까먹고는 딴짓을 하며 걸어온다.
딸네집 옆에는 단지가 큰 아파트가 있는데 그곳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도 많고 아이들이 걸어 다니기 좋게 길이 조성되어 있다. 손주와 그 아파트를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근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내가 손주를 안아주지 않고 자꾸 걷게 하는 것은 손주의 건강과 걸음걸이의 안정을 찾기 위함이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요즈음은 제법 안정적으로 걷는다.
그렇게 손주와 아파트단지를 함께 걷노라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지청구를 해댄다. 손주에게 귀엽게 생겼다거나 앙증맞은 작은 곰이 걸어간다며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손주가 아장아장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 한없이 귀엽기만 하다. 내가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에는 마을에서 아기가 걸어가는 것을 자주 만났는데 지금은 아기가 걸어가는 모습조차 만나기가 힘든 세상이다.
그리고 공원이나 거리에서 아기를 데리고 걸어가는 모습을 만나기란 더더욱 힘들다. 내가 무슨 인연으로 뒤늦은 나이에 귀여운 손주를 만나게 되었을까.
손주는 매일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다. 그런 손주와 걷는 것을 두고 안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밀당을 즐기는 것도 인생의 즐거운 한 시절이 아니던가.
아직은 손주가 "엄마", "아빠", "맘마", "안아"란 말밖에 하지 못하지만 손주를 안아 주러 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되어 간다.
세상 모든 할아버지가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만 내 손주도 앞으로 말도 잘하고 걷기도 잘하는 아기로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나중에 할아버지와 함께 즐겼던 시간을 추억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