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아침 5시에 공항으로 간다기에 새벽에 일어나 여행 가방에 이것저것을 챙겨 넣었다.
어제저녁에는 이곳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서 일행과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노천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생맥주를 기울였다.
이곳 해변은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한다. 물론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니며 먹는 것도 금지다. 해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정된 장소에서 담배만 피울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운 해변을 관광지로 보존하려는 금지행위란 생각이 든다. 남극의 뭇별들이 해안으로 쏟아져 내리는 노천카페에 앉아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여행이 끝나가는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일행과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었다.
쪽빛 바다 위로
하얀 유람선 한 척이
손님들을 가득 싣고 막 떠나고
마치 연인을 떠나보낸 듯
끼륵대며 뒤를 따르는
바닷갈매기 날개 위로
저녁노을이
붉은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낮 동안
거대한 하버브리지 위를
떠돌던 이방인 같은 구름 몇 점
바다 위로 떨어지고
구름과 하늘을 삼킨 바다는
영화처럼 영상으로 부서진다.
……(중 략). (김지원, ‘노천카페에서’)
아마도 시인은 호주 시드니의 노천카페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느낀 감상을 시로 노래한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은 노래나 시나 영화로 형상화해도 아름답다.
아직 카페 문화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카페에 앉으면 시인이 되나 보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감상과 느낌을 시나 노래로 표현하는 것 아닐까.
타국에서 만나는 하늘의 구름이나 바닷가 저녁노을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큰 것 같다. 이번 여행이 끝자락을 향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함께 온 일행은 카페 종업원에게 생맥주를 자주 시켰다.
저녁은 슬금슬금 어둠을 향해 가고, 생각의 톱은 높아만 간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다.
탁자에서 생맥주의 거품이 주르륵 쏟아져 내리듯이 여행의 기대감도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정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교차되어 떠오른다.
지난밤 호텔에 일행을 아침에 깨워달라고 모닝콜을 부탁했는지 종업원이 일일이 방을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려댄다.
호텔 밖에는 익숙하지 않은 새소리와 이른 아침부터 어딘가로 떠나가는 차량의 경음기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트린다.
지난 열흘간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만난 풍경이 기억의 다리를 건너 마음속에서 비상하며 날아간다. 비행기로 계절을 거슬러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내려와 누린 이 영광. 내게는 어쩌면 사치스러운 여행이 아니었을까.
여행이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란 기대감은 무너지고 가슴에는 그립고 아쉬운 마음만 쌓여 서글프기만 하다. 그리운 대상은 동경하는 마음만으로 족한데 막상 동경하던 대상을 만나면 기대치가 무너지고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허전해진다.
여리어만 가는 마음의 상실감을 무엇에 기대어 회복시켜야 할까.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바람을 타고 바람을 따라 낯선 거리를 배회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는 것은 없고, 가이드가 틈틈이 전해준 문화의 차이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을 남기고 떠나는 허망함처럼 골드코스트도 이제 추억과 향수로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 뉴질랜드나 호주는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나라란 생각이 든다. 우리보다 삶의 질이 높은 조건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부럽다.
두 발로 땅을 밟으며 바라보는 겉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거리를 나서거나 여행하면서 만난 풍경에는 이네들이 이룩한 삶의 완성을 위한 노력과 움직임이 엿보였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삶도 강물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만 간다. 도시의 구석구석에 선 야자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인사를 건네는 새벽이다.
어제저녁에 일행과 노천카페에서 마신 생맥주의 향기가 아직도 가슴에 진하게 배어 있다. 맥주의 짙은 향기가 없어지기 전에 호주를 떠나가야 할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정이 부산하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허무함과 지난 열흘간의 시간이 갑자기 사라지자 허망함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지금에 와서 여행의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지만, 여행은 지나가면 그만이다. 인생도 되돌릴 수 없듯이 여행도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다. 여행이나 삶이나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없는 밀물이다.
브리즈번 공항에 가기 위해 일행은 서둘렀다. 가이드가 버스에서 인원을 점검하더니 버스를 출발시켰다. 컴컴한 사위를 뚫고 달려온 버스가 공항에 도착하자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일행 모두가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나서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브리즈번 공항과도 이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