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매듭

by 이상역

직장에 들어와 근무한 지도 그럭저럭 삼십 년이 되어간다. 공무원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업무는 비슷비슷하지만, 사무실 분위기와 업무의 강도는 다르다.


내년에는 정들었던 직장도 물러나야 한다. 직장을 떠나기 전까지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직장은 업무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인연도 소중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많은 인연을 맺으면 좋겠지만 인연을 맺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다. 관계는 업무나 고향이나 나이 듦이 비슷한 입사 동기 등 갖가지 연유에서 비롯한다.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관계가 깊어진다. 그런 인연은 좋은 관계로 유지되고 오래도록 이어간다.


지금까지 직장에 들어와 맺은 인연은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맺은 인연을 직장을 떠나서까지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관계도 물처럼 가만히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나누어야 발전한다. 따라서 관계를 유지하려면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정리해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은 한순간에 강제로 정리할 수 없다. 그간 소원했던 사람이나 앞으로 만나지 못할 사람의 연락처는 핸드폰에서 삭제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알고 지내던 사람의 연락처를 삭제했다고 그 사람과 관계가 곧바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관계는 상호작용이라 자신만 정리했다고 해서 정리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해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관계는 나만 정리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연락해오면 유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는 사람의 연락처를 삭제하기 전에 일정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오지 않거나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끝난다.


내 핸드폰에는 약 600명의 연락처가 들어 있다. 몇 년 전에 택시를 타고 가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그간 알고 지내던 사람 중 일부는 본의 아니게 관계가 강제로 정리되었다.


그 후 지인의 연락처를 복구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 핸드폰을 분실하면 가장 아쉬운 것은 지인의 연락처와 가족과 함께 찍은 추억의 사진이다. 잃어버린 핸드폰에는 천여 장의 가족사진이 들어있었다.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과 혼자 취미 삼아 찍은 풍경 사진이다. 더불어 핸드폰에 들어 있던 약 500명의 연락처가 강제로 사라졌다.


지인의 연락처를 복구하면서 느낀 것은 그간 참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핸드폰에 600명의 연락처가 들어 있지만, 막상 술 한잔 마시자며 연락할 사람을 찾아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들 중 과연 술 한잔 마시자며 나오라고 하면 몇 명이 나올까. 그들과 인생의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지인의 연락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물러나기 전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나둘씩 인연의 관계를 생각하며 정리를 해야겠다.


지인의 대부분은 직장이나 고향이나 학교 관계로 맺어진 관계다. 하지만 몇 년째 연락이 없거나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의 연락처는 삭제하고 보관할 이유도 없다.


직장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장을 퇴직하면 들어오는 수입은 뻔한 데 그들과 관계를 이어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직장이나 사회나 관계는 업무나 취미나 경조사 등을 통해 유지된다.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소득도 따라야 한다. 퇴직해서 사회에 나가면 경조사 챙기는 것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직장을 퇴직하고 사회로 나가기 전에 인연을 정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앞으로 직장을 물러나면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는 신중하게 맺고, 지금까지 맺은 인연은 하나둘 정리해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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