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돌잔치

by 이상역

화해는 서로 간의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나쁜 감정도 풀어내는 것이다. 화해의 방식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서로 만나 악수하며 응어리진 한을 풀거나 대폿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술잔을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면서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것이다.


며칠 전 처가 외삼촌 손자의 돌잔치를 다녀왔다. 처가 외삼촌과는 그간 소원하게 지내다가 돌잔치를 계기로 다시 만났다.


근 십여 년간 처가 외삼촌을 만나지 못하다가 돌잔치에서 뵙게 되자 반가웠다. 처가 외가에는 큰외삼촌과 작은 외삼촌 그리고 막내 이모가 있다.


큰외삼촌은 지난해 신장암과 폐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고, 작은 외삼촌은 교직에서 물러나 공공기관에서 무지개 돌봄 사원으로 일할 예정이란다. 그리고 막내 이모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데 내년에 명예퇴직을 고려하고 있단다.


대개 암은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면 치료가 어렵다. 그런데 큰외삼촌은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고도 새로 개발된 신약을 복용하면서 운이 좋게도 전이된 암세포가 줄어들고 몸이 좋아졌다고 한다.


돌잔치를 준비한 큰외삼촌 아들은 돌잔치를 진행하면서 이번에 돌잔치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매형과 조카들 얼굴을 보고 싶어 해서 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처럼 처가 외가 쪽 사람을 만나자 세월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세월은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가온다는 진리가 새삼스럽다.


처가 외가댁과 처남들이 소원해진 것은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다. 장모님 喪을 마치고 충주의 한 식당에서 처남들이 외삼촌에게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처가 외가댁은 장모님만 빼고 세 분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두 분은 교단에 근무하고 다른 한 분은 대기업에 다니고 유산도 어느 정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처남들은 장모님이 충주에서 시집오기 전 농사일로 갖은 고생을 하고 유산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서운한 감정을 외삼촌에게 터트렸다.


그러자 외삼촌은 “이놈들 봐라, 그동안 잘 봐주었더니 내게 대드네, 어디 두고 보자.”라는 험한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렇게 충주의 식당에서 헤어지고 근 십여 년을 소원하게 지내왔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관점에서 남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보이면 안 된다.


처가 외가댁 사람들이 어떤 삶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는지 세세한 사연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 주장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말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구석으로 몰리면 자신을 대변하고 핑계를 댄다. 또한 사람은 타인의 입장과 관점에서 남을 배려하는 말에 서툴다.


식당에서 처남들과 외삼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한판 크게 붙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외삼촌이 처남들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쌩’하는 칼바람을 일으키며 식당을 뛰쳐나갔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예측하지 못한 말을 듣거나 불편한 말을 들으면 누구나 화부터 내고 성질을 부린다.


그날 장모님이 살아 계셔서 외삼촌에게 서운한 감정을 말했다면 외삼촌이 수긍했겠지만, 당사자가 없는데 한 말이 시시비비로 전이되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충주의 식당에서 한바탕 사건이 일어난 후 한동안 처가 외가댁 행사에 아내와 처남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에 외삼촌이 손자의 돌잔치를 계기로 매형과 조카들을 부른 것은 화해를 위한 제스처다. 돌잔치에서는 이전에 앙금을 불러일으켰던 이야기는 오고 가지 않았다.


십여 년의 세월이 많은 것을 가려주고 덮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누구도 장모님이 돌아가시던 해의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려고도 말을 꺼내지도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줄 당사자가 영원히 사라져서다. 외삼촌 손자의 돌잔치를 계기로 십여 년 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그런지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외삼촌은 손자의 돌잔치를 끝내며 참석한 가족들에게 여기 오느냐 고생했다며 가족마다 교통비 명목으로 봉투를 하나씩 건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삶은 고통을 겪고 나서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이 떠올랐다.


처가 외가와 헤어지고 처남들과 분당의 한 빵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남들과 만난 지도 오래되어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카들도 참석했으면 좋으련만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처남들과 빵집에서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분당에서 처남들과 헤어져 서울 집으로 전철을 타고 오면서 삶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 맺힌 서운한 감정은 얼굴을 맞대고 푸는 것보다,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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