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다. 앞모습을 가꾸고 꾸미기 바쁜데 뒷모습까지 신경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끔 방송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유유히 떠나거나,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심폐소생술로 살려 놓고 말없이 자리를 떠난 사람의 사연을 종종 접한다. 그때마다 방송은 그들을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칭송한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떠난 그들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어떤 대가나 칭찬을 바라지 않고 떠난 뒷모습 때문이다.
심폐소생술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사람이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이 한 일이라고 공치사를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생명을 구한 행위는 존경하겠지만 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앞모습을 예쁘게 꾸미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꾸는 행위에는 익숙하다. 심지어 앞모습 꾸민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앞모습에는 겉으로 드러난 얄팍함이 배어 있다.
진실한 아름다움은 본연의 마음에서 드러난다. 아름다움이란 대가나 자랑이 아닌 본심에서 우러난 순수함의 발현이다.
앞모습과 뒷모습에는 시간이 간섭한다. 앞모습은 현재라는 시간이 작동하고 뒷모습은 현재를 지나 미래라는 여유가 작동한다.
앞모습은 거울 앞에서 얼굴을 꾸미고 옷매무새를 고치는 상황을 헤쳐나가는 동작으로 이루어지고, 뒷모습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의 결과로 나타난다.
사전에 앞모습은 앞에서 보거나 본모습이고, 뒷모습은 뒤에서 본모습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해석하면 앞모습에는 자신이나 타인이 바라본 시선이 뒷모습에는 나 아닌 타인이 바라본 관점이 작용한다.
앞모습과 뒷모습을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앞모습과 뒷모습을 구분하는 기준은 자신이나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다. 사람은 자신의 눈을 통해 앞모습을 살필 수 있지만, 뒤쪽에는 눈이 없어 뒷모습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눈을 통해서 드러난다.
사람을 보고 멋있다고 하는 것은 앞모습을 통해서다. 앞모습의 평가는 거기까지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하지 않는다. 뒷모습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그가 동작이나 행위를 남기고 떠난 뒤에 남긴 발자취를 보고 판단한다.
앞모습에는 현재의 모습이 담겨 있다면, 뒷모습에는 본연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결국에 뒷모습은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보고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사람은 앞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지 않는다. 타인을 앞에 두고 앞모습이‘어떻다.’라고 말하는 것도 꺼린다. 대신에 사람의 뒷모습을 말하라면 그가 갖고 있던 생각을 표현한다.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는 것은 마음에 부담이 가지만 뒷모습을 보고 말하는 것은 부담이 덜 간다. 마음에 부담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본심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다.
사람이 멋지다 하는 기준은 앞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뒷모습을 보고 ‘멋지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멋지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의 앞모습에 대한 평가는 익숙하지만, 뒷모습에 대한 평가는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을 앞에 두고 앞모습과 뒷모습이 ‘어떻다.’라고 하는 것은 결례다.
사람은 평가의 대상도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뒷모습이 어떻게 평가될지는 꾸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성인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