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

by 이상역

봄바람이 고향의 전설을 이리저리 휘몰아가는 곳. 충북 진천 상계리 멱수 마을. 정지용 시인의 ‘향수’처럼 마을 이름만 들어도 옛이야기 지절대는 시냇물 소리와 인정이 가득한 옛 모습이 떠오른다.


마을에서 산골짜기로 바람은 쓸쓸하게 불어 가고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누군가가 나를 부를 것만 같은 곳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봄은 사람의 시각과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고향의 산자락이 기억난다.


어스름 초저녁에 소쩍새가 구슬프게 우는 산길을 따라 걷던 봄날의 흥겨운 정취와 덤불숲이 무성한 계곡을 따라 마중을 나온 구수한 연기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봄이 되면 고향의 계곡에선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와 무언가 나를 뜨겁게 달궈주던 정령을 느꼈다. 그런 봄날을 즐기며 계절의 자람과 정취에 흠뻑 빠져들곤 했다.


타지에 나와 봄을 맞이할 때마다 고향에서 느꼈던 강한 유혹과 느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은 너른 들과 산을 접하고 살아가야 자연에서 전달되는 정령의 힘을 느끼는 것 같다.


원시인이 문명의 바람에 익숙해질수록 사물을 판단하는 본능의 감각을 잃어가듯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몸의 근원적인 감각이 점차 무디어만 간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속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더불어 반복된 일상에 매몰되다 보니 봄을 즐기는 정취와 흥미도 점점 엷어진다.


오랜만에 봄나들이 삼아 애마를 붙잡고 발끝으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봄날에 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몸이 용납하지 않는다.


차가 인덕원을 지나 과천에 들어서자 길 건너 가시덤불 숲에서 개나리가 생명의 꽃불을 지펴댄다. 차 안에서는 청춘 시절에 들었던 Barbra Streisands의 'Women in Love'가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감정의 끝자락을 들추어낸다.


풋풋하던 시절의 감정을 강하게 당기려는 듯 여가수의 목소리는 고음을 향해 절정으로 치닫는다. 팝송은 은은하고 감미로운 향수를 툭툭 건드린다.


대중가요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절절한 감정의 호소라면 팝송은 추억이란 향수와 옛 시절이라는 청춘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시절에 유행했던 팝송을 들으니 마음도 청춘 시절로 빠져든다.


그러자 ‘Women in Love’는 사랑에 빠진 여자가 아닌 나를 사랑에 빠트린 음악으로 들려온다. 차창 밖에서 봄의 정령이 쑥쑥 소리를 내며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니 봄이란 계절이 마음 곁에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태어난 직후의 모습이 아름답다. 봄은 우리에게 젊은 꿈을 꾸게 하고, 삶에 희망을 준다.


외국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는 청춘 시절의 감정이 오롯이 배어있고, 내 눈에는 노랗고 하얗게 핀 꽃들이 투영되면서 청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아련한 환상에 젖어든다.


사람은 봄이 오면 희망과 소망을 노래한다. 봄비가 내리고 난 후 전해져 오는 싱그러움이 가슴 가득 시원하게 밀려온다.


봄을 알리는 꽃의 향연이 서서히 능선과 계곡을 타고 올라와 이곳에도 잔치를 벌인다. 머지않아 산자락에 진달래꽃과 벚꽃이 함초롬히 피어나면 사람들의 외출을 유혹할 것이다.


아파트 담장에 핀 목련꽃은 중후한 여인과 같이 화사한 모습이고, 길가에 핀 개나리꽃은 시골 아저씨와 같이 푸근한 인정을 느끼게 한다.


봄꽃은 바라보면 볼수록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리고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갖은 상념을 잠재우고, 꽃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마술에 걸리게 한다.


사람의 마음을 맑고 밝게 변화시키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만이 사람의 마음을 매정하게 심판한다. 사람은 자연의 모습과 변화를 통해 새롭게 마음을 정리하면서 꿈을 꾼다.


봄은 삶의 청춘이자 젊고 푸르렀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강한 원동력이다. 나는 봄이 좋다. 봄이 오면 산이나 들을 찾게 되듯이 새로운 생명을 찾아 나서야 마음도 안정된다.


따뜻한 봄날에 집에 앉아 있으면 몸이 들썩거리고 마음이 답답하다. 그 들썩임과 답답함의 해소는 봄이 다가오는 자연을 만나야 가라앉는다.


봄처녀라는 말이 있듯이 봄은 여자의 계절이다. 봄은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러일으켜 나들이를 유혹하는 감정을 품게 한다.


개나리꽃, 목련꽃, 산수유와 같은 꽃을 출퇴근길에서 자주 만난다. 그 꽃들이 딸들처럼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봄꽃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고향에서 어머니가 피운 저녁연기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구수한 냄새를 피웠듯이 남은 생애에도 구수한 사람 냄새를 풍기면서 휘적휘적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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