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 나오는 뭇 생명을 바라보면 자연의 싱그러움과 계절의 환희를 느낀다.
봄날에 따뜻한 대지의 속삭임을 듣노라면 가슴 한편에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파란 추억이 떠오른다.
시골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십여 리나 된다. 그 길 곳곳에는 봄바람에 아롱거리는 아지랑이처럼 추억의 무늬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그중에 제일 먼저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봄이 오면 친구들과 개울가의 버드나무로 달려가 휘휘 늘어진 나뭇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불고 다녔다.
친구들과 피리 소리를 크게 내기 위해 입안 가득하게 바람을 불어넣어 두 눈이 튀어나오도록 불었다. 그리고 버들피리 부는 것이 시들해지면 빈 논에 둑새풀이 가득한 논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풀씨를 채취놀이를 즐겼다.
바퀴 모양이 새겨진 검정 고무신을 손에 들고 둑새풀의 풀씨를 훑으며 뛰어가면 풀씨가 고무신 안으로 가득 채워졌다. 친구들과 풀씨가 가득한 고무신을 치켜들고 논두렁에 서서 누구의 것이 더 멀리 날아가나 하는 게임을 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트랙터로 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소를 이용한 쟁기로 갈았다. 트랙터는 계절에 상관없이 논을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소를 이용한 논갈이는 이듬해 봄 농사철이 되어야 가능했다.
따라서 봄이 되면 논에는 둑새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그곳이 개구쟁이들에겐 운동장과 같은 놀이터였다. 둑새풀이 가득한 논을 뛰어가면 해안가 모래톱의 발자국처럼 둑새풀이 듬성듬성 쓰러졌다.
나는 친구가 가지 않은 곳을 택해 뛰어가며 풀씨를 받았다. 집에 가 보았자 마땅한 놀이도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책보를 논둑에 팽개치고 저녁이 다하도록 뛰어놀던 놀이가 둑새풀 풀씨 채취다.
그렇게 둑새풀 채취 놀이를 즐기다 싫증이 나면 친구들과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개구리를 잡았다. 나뭇가지로 논둑을 툭툭 때리고 가면 개구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개구리는 방향을 재지 않고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기 때문에 잡기가 어려웠다. 개구리가 튀어 오르면 앉을 곳을 향해 온몸을 던져 다이빙해 가며 개구리를 잡는 놀이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일 즐거운 놀이였다.
요즈음 시골길을 걷다 논을 바라보면 둑새풀을 볼 수가 없다. 농약이 많아진 탓인지 가을 추수가 끝나고 트랙터로 논을 갈아 둑새풀이 자라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둑새풀을 만나는 것조차 힘들다.
봄에 대한 정취는 대지의 열기로만 느끼지 않고 손끝으로 전달받는 촉촉함과 대지의 싱그러운 기운이 온몸에 감겨 왔다.
봄이 오면 논두렁을 따라 걷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맨발로 흙과 풀을 밟으며 자연과 대지를 알았고, 대지에서 솟아나는 봄의 정령을 피부로 접촉하며 자랐다.
요즈음 생명이 탄생하는 봄 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면 시선은 고향의 들녘으로 향한다. 그러면 머릿속에는 과거의 한때를 서성이거나, 지나간 옛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제 지나간 봄날의 아련한 느낌과 놀이는 먼 곳으로 사라졌지만 봄이 오는 길목이면 봄의 노래가 가슴을 울리면서 옛 노래처럼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