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수정)

by 이상역

낙화하는 꽃잎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 구봉산 능선 길에 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울긋불긋 수를 놓았다. 꽃은 피어날 때는 화려한데 떨어진 꽃잎은 쓸쓸하고 허무하게만 바라보인다.


미인박명이란 말처럼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속절없이 생명을 떨구었다.

능선 길에 낙화한 꽃잎이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한 시절도 살지 못하고 단명하는 꽃잎이 가엽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꽃으로 태어났을까. 바람에 허공을 떠돌다 분분히 낙화하는 모습에서 가을날의 낙엽을 떠오르게 한다.


어쩌면 나도 꽃잎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화려하게 꽃 피웠던 시절도 언젠가는 꽃잎처럼 낙화하고 말 것이다. 사람이나 꽃잎이나 낙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다.


내 발길에 순서 없이 차이는 꽃잎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바닥에 겹겹이 떨어진 꽃잎을 밟는 발걸음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낙화한 꽃잎을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가 없다. 내게 밟힌 꽃잎은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가는 길을 가로막지만 않으면 피해서라도 갈 수 있을 텐데.


저문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꽃잎이 간 곳을 알려고 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나무에 꽃이 피면 아름답게 바라만 볼 뿐 낙화한 꽃잎이 어디로 갔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꽃잎의 생로병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내 삶도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간 남들에게 이리저리 차이고 밟히며 살아온 것 같다. 남들도 내 생명이 낙화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남들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없듯이 남들도 내 생로병사에 관심이 없을 듯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모두가 아름답다.

그들 중 꽃은 다른 것에 비해 곱디고운 색깔로 피어나 아름답게 바라보일 뿐이다. 능선 길에서 누군가가 하모니카로 '밀양아리랑'을 불면서 지나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라는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리자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고 보니 하모니카를 타고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나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날아가는 꽃잎이나 같은 신세란 생각이 든다. 단지 하모니카 소리는 삶을 흥겹게 북돋워 주고, 낙화한 꽃잎은 이지러진 삶의 흥망성쇠를 돌아보게 한다.


나도 세상에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났다. 세상에 내 생명을 드러나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남들과 함께 공존하며 오롯이 삶을 누린 결과다. 오늘따라 내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모니카 소리를 따라가면 신명 나는 삶이 기다릴 것 같고, 떨어진 꽃잎을 따라가면 나도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데려갈 것 같다.


나무에 핀 꽃은 길어야 열흘도 채우지 못하고 낙화해서 어딘가로 사라진다.

내 생명도 언젠가는 화려하게 꽃을 피우다 낙화한 꽃잎처럼 사라질 것이다. 오늘은 낙화한 꽃잎이 어디로 간 것인지 인생의 선배이자 꽃잎을 떨군 벚나무에 다가가서 물어나 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료한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