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허공을 떠돌다 떨어진 꽃잎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구봉산 능선 길에 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울긋불긋 수를 놓았다. 꽃은 피어날 때는 화려한데 고개를 떨군 꽃잎을 바라보니 허무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속절없이 생명을 떨구었다.
능선 길에 꽃잎이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한 시절도 살지 못하고 단명하는 꽃잎이 가엽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꽃으로 태어났을까.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나무가 시련과 인내라는 기다림 끝에 꽃을 피웠는데 꽃잎을 떨구는 나무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나무가 아픔과 진통을 겪어가며 꽃잎을 떨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쩌면 나도 꽃잎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며 화려하게 꽃 피웠던 삶도 언젠가 낙화할 것이다.
내 발걸음에 순서 없이 밟히는 꽃잎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닥에 겹겹이 떨어진 꽃잎을 밟는 발걸음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꽃잎을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가 없다. 내게 밟히는 꽃잎은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가는 길을 가로막지 않으면 피해서라도 갈 수 있을 텐데.
발끝에 뽀드득거리며 밟히는 꽃잎이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제발 밟고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꽃잎의 가냘픈 외침 소리에 내딛는 발걸음이 자꾸만 엉켜버린다.
저문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꽃잎이 간 곳을 알려고 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나무에 꽃이 피면 바라만 볼 뿐 꽃잎이 어디로 갔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꽃잎의 생로병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내 삶도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간 이리저리 차이고 밟히며 살아왔다. 아마도 내가 남들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남들도 내 생명이 낙화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모두 아름답다.
꽃은 다른 것에 비해 곱디고운 색깔로 피어나 더 아름다울 뿐이다. 능선 길에서 누군가가 하모니카로 '밀양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라는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니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생각해 보니 하모니카를 타고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나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날아가는 꽃잎이나 같은 신세란 생각이 든다. 단지 하모니카 소리는 삶을 흥겹게 북돋워 주고, 떨어진 꽃잎은 이지러진 삶의 흥망성쇠를 돌아보게 한다.
나도 세상에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났다. 세상에 내 생명을 드러나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남들과 함께 공존하며 오롯이 삶을 누린 결과가 아닐까.
오늘따라 내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모니카 소리를 따라가면 신명 나는 삶이 기다릴 것만 같고, 떨어진 꽃잎을 따라가면 나도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데려갈 것만 같다.
세상을 떠도는 내 생명도 화려하게 꽃을 피우다 언젠가 꽃잎처럼 사라질 것이다.
나무는 해마다 꽃을 피워 자신의 흔적이라도 남기는데 나는 인생을 어떻게 꽃 피워서 흔적을 남겨야 할까. 오늘은 난분분히 꽃잎을 떨구는 벚나무에 다가가서 꽃잎이 어디로 간 것인지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