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추억

by 이상역

논에서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어대는 날이면 고향에서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모를 심던 시절이 생각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산과 계곡이 깊은 산촌마을이다. 길상산이 마을을 빙 둘러싸서 아침에 해는 늦게 뜨고 저녁에 해는 일찌감치 시루봉을 넘어간다.


오지 산촌이라 밭이 많고 논은 적다. 마을에는 사십여 호가 대대로 이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하지만 한 섬지기 논을 소유한 집은 몇 안 되었다.


마을의 텃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논은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 옆과 아랫마을 밑 너른 뜰에 있었다. 산촌마을에서 모내기는 한 해 농사 중 제일 커다란 행사였다.


개구리가 울어대는 모내기철이 되면 마을 어른들이 이장집에 모여 회의를 했다. 회의에서 자신이 심을 논의 평수와 모판에 뿌린 모의 성장속도와 모를 심을 수 있는 가족의 수를 따져 모내기 날짜를 잡았다.


마을 회의에서 모내기 날짜가 잡히면 어머니들은 일꾼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러 장에 나가 재료를 사 오고, 아버지들은 날짜에 맞추어 모를 심을 수 있도록 소에 멍에를 씌워 써레질을 했다.


모내기 일정은 장맛비가 내리거나 마을에 큰일이 없는 한 계획된 날에 심어야 한다. 그리고 모내기할 때는 논의 소유를 불문하고 집집마다 일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동원되었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남자들은 새벽부터 모내기할 집의 모판에 들어가 모를 쪘다. 아침 새참 먹기 전에 모 찌는 일을 끝내면 새참을 먹는 동안 모를 심는 주인은 지게나 경운기로 모를 날라 모 심을 논에 흩뿌렸다.


논에 모를 흩뿌리는 작업이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맨발로 논에 들어가 모 심을 준비를 했다. 모를 심을 때는 요령도 필요하고, 못줄을 띄워 한 번에 두 줄씩 심었다.


마을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면 좌우 논둑에 있는 사람이 못줄을 띄운다. 못줄을 띄우면 자기 앞에 놓인 줄에 표시된 곳에 모를 심되 우측 사람과 마주할 때까지 빠르게 심어 나간다.


그렇게 우측 사람을 만날 때까지 모를 심은 후 다시 줄을 띄우지 않은 곳에 눈대중으로 모를 심되 좌측 사람을 마주할 때까지 심는다. 따라서 모내기는 양 옆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일이 더디거나 수월하다.


가끔 옆에 손 움직임이 느린 사람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심을 모의 분량만 남겨두고 그대로 모를 심으며 뒤로 다. 결국 모를 심을 때 더디게 심는 사람은 피할 수밖에 다.


논에 모를 심는 속도는 양 옆 논둑에서 못줄을 띄우는 사람의 손놀림에 달렸다. 사람들이 모를 심는 속도에 맞추어 못줄을 띄우지 않으면 모내기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심한 경우 싸움까지 번진다.


모내기철에 모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따라서 하루 먼저 심어도 하루 늦게 심어도 문제다. 하루 먼저 심으면 모가 어려 물에 파 묻히고 하루 늦게 심으면 모가 웃자라 깨어나는데 시간이 걸린다.


모내기 일정에 따라 자기 논에 모를 심는 날은 아침 새참과 점심과 저녁 새참을 제공해야 한다. 모를 심는 집에마을 어머니들이 아침부터 일꾼들이 먹을 밥과 음식을 준비해서 광주리에 이고 논으로 내왔다.


모내기는 종일 허리를 숙이고 해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모를 심으면 오후에는 허리가 뻑뻑해지고 저녁이 되면 허리가 잘 숙여지지도 않는다.


모내기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하는 작업이라 쉴 틈이 없다. 다랭이 논의 모를 심은 후 쉴 참이 생길 때마다 막걸리 한 대접을 마셨다.


모내기는 거의 보름 동안 이어진다. 모내기 작업이 끝나면 집집마다 일하러 나온 사람을 날짜별로 집계하여 총인원을 계산하고 논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당을 계산하여 품값을 주었다.


그리고 논을 소유한 사람은 논의 양과 모내기에 나온 사람의 수를 계산하여 품값을 냈다. 모내기 품값 정산이 끝나면 한 해 농사인 모내기 작업은 끝이 났다.


골마을에서 마을사람들과 모를 심던 시절이 그립다. 산으로 빙 둘러싸인 고향 사람들은 아직도 손으로 모를 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시절 함께 모내기하며 허리 아프다고 툴툴대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면 모내기철에 북적이던 마을사람들의 잔상이 쉼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월은 모를 심던 고단함을 그리움으로 남기고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내년에는 모내기철에 고향에 찾아가서 써레질한 논에 들어가 모나 한번 손으로 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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