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구봉산과 승상산을 올라가는데 바람 한점 불어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몸에 땀도 더 나고 숨이 가빠져서 자주 쉬면서 올라갔다.
이런 날은 집에 가만히 앉아 선풍기나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최선인데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 정도 더위쯤이야 하고 만만하게 보고 나왔는데 산에 올라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갑절은 더운 것 같다.
바람은 불지 않고 햇볕은 그대로 정수리로 내리쬐니 겉옷까지 땀이 배어 나와 걸을 때마다 옷이 걸리적거린다. 어느 정도 땀이 나면 참으며 걷겠지만 땀이 물 흐르듯 솟아나니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오늘처럼 바람 한 점 없고 무더운 날이면 고향의 부모님이 생각난다. 논농사보다 어려운 것이 밭농사다. 논농사는 일 년에 손이 몇 번 가면 그만인데 밭농사는 손이 끝없이 가야 한다.
특히 밭농사 중 담배농사가 손이 많이 간다. 담배농사는 멀칭을 씌워 작물을 기르기 때문에 담배 심은 밭에 들어가면 흙에서 멀칭에서 담뱃잎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일해야 한다.
무더운 날에는 흙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도 벅찬데 멀칭에 독한 담뱃잎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냄새로 머리가 지근지근거려 보통의 인내심이 없이는 담배 밭에 들어가서 일하지 못한다.
담뱃잎의 특성은 무더운 날에 잘 익는다. 담뱃잎은 순서대로 무조건 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담뱃잎의 겉면에 털이 벗어지고 노란색이 보일락 말락 할 때 따야 한다.
덜 익은 담뱃잎을 따서 말리면 노란색이 나오지 않고 벌겋거나 검은색이 나온다. 따라서 담뱃잎이 익은 것을 가려서 따서 엮고 말려야 노란색이 나온다.
담뱃잎은 초복에서 말복기간에 뜨거운 햇볕을 받아야 잘 익는다. 담뱃잎을 따는 시기는 어쩔 수 없이 무더운 여름에 따서 말려야 한다.
부모님은 결혼해서 환갑이 지날 때까지 근 사십여 년을 담배 농사를 지으셨으니 여름의 무더위에 대하여는 나보다 더 잘 느끼며 사셨을 것이다. 부모님이 담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골에서 목돈이 나오는 유일한 소득원이었기 때문이다.
담배 농사는 정월 대보름부터 겨울에 흰 눈이 내릴 때까지 지어야 한다. 담배농사에서 수익이란 부모님이 몸으로 흘린 땀과 눈물과 자식을 위한 정성인 샘이다.
팔 남매나 되는 자식을 낳아 시골에서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기 위해 한 여름에 땀을 뽈뻘 흘리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고 그저 안쓰럽게만 다가온다.
부모님에게 담배 농사가 없었다면 팔 남매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할 때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장만해주지 못하고 출가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에 덥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남들에게 덥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님이 흘리신 땀이 생각 나서다. 부모님이 흘리신 땀에 비해 나는 고작 산에 오르며 흘린 땀이니 덥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다.
가는 세월이 무섭다고 하더니 어느덧 내 나이도 이순을 넘어 칠순을 향해 간다. 오늘의 나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며 흘리신 땀과 사랑과 정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창문 밖에서 말매미는 목청을 돋워가며 울어대고 바람은 숨을 죽인 채 어딘가로 사라지고 햇빛은 낯을 가리지 않고 민낯으로 무섭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여름의 무더위가 더해갈수록 내 머릿속에는 고향에서 보낸 시절이 아른거린다. 그중에 커다란 감나무와 느티나무 밑에 앉아 담뱃잎을 엮던 고사리 손과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카세트를 들고 나와 큰 소리로 틀어놓고 담뱃잎을 엮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요즈음 담배 농사는 어떻게 짓고 있는지 직접 본 적이 없다. 건조실은 사라지고 전기로 담뱃잎을 건조하는 벌크와 담뱃줄에 잎을 엮던 것도 사라지고 밭에서 따온 그대로 묶어 말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담배 농사도 기계화가 이루어졌는지 담배 농사를 짓는 농가가 아직도 있는지 하는 궁금증이 인다. 어느 일이나 사람보다 기계로 대신하는 것이 편리한 시대이니 담배 농사도 기계화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아버지 세대는 담배 농사의 기계화는 꿈에도 생각조차 못했다. 여름날이 아무리 무더워도 장맛비가 내려도 사람의 손은 필요했다. 고사리 손이든 꼬부랑 할아버지 손이든 손만 있으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나니 문득문득 지나간 과거가 생각나고 무더운 여름날에 지게에 담뱃잎을 잔뜩 짊어지고 절 안에서 시골집으로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내려오던 고단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