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노래는 마음에 위로를 주고 한을 달래준다. 그렇다고 아무 노래나 그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깊은 나락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거나 슬픔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만났을 때다.
물론 노래가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적잖은 위로와 마음의 한을 달래면서 힘든 상황이나 슬픔을 견디게 하거나 벗어나게 한다. 그런 노래가 자신의 인생과 삶의 노래가 되고 즐겨 부르게 된다.
내 인생을 대변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삶에서 이런저런 사연도 겪고 곡절도 많았는데 어떤 노래가 마음을 달래주었을까. 가끔은 살아가는 날이 힘들 때 그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데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데 억지로 무언가 할 수도 없고, 주변의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도 아무도 없는 막막함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노래다.
나는 외진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소를 계곡에 끌고 가서 풀을 뜯어먹게 했다. 계곡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 소를 바라보며 딱히 할 일이 없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시절 유행하는 가요나 동요를 순서 없이 큰 소리로 부르면 계곡에 울려 퍼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풀냄새"란 노래다. 소가 풀을 뜯어먹는 것을 지켜보며 커다란 바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속이 시원해지고 간간이 소가 풀을 되새김질하면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릴 때 몸이 지치고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참기 힘들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했다. "소양강 처녀", "개나리 처녀", "바다가 육지라면" 등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오늘 손주가 우리 집에 왔는데 손주의 낮잠을 재우면서 즐겨 부르는 노래가 생겼다. 손주의 취향이 독특한 것 같다. 손주를 어깨띠에 두르고 밖에 나와 돌아다니며 자장가 삼아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런데 손주가 트로트를 부르면 손사래를 친다. '고향 아줌마' 노래인 "술잔을 들다 말고~"를 부르려니 손주가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라며 부르지 말란다.
그러면 '고향 무정" 노래인 "구름도 울고 넘는~"을 부르려니 다시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라고 외친다. 손주가 무슨 노래를 좋아할까 머릿속에서 이것저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클레멘타인' 노래를 좋아하나 하고 "넓고 넓은 바닷가에~"를 부르니 가만히 듣는다. 손주가 참 특이한 노래를 좋아하네라고 생각혀며 노래를 부르며 걷다 노래가 끝나자 손주가 다시 "또, 또"를 외친다.
손주의 "또, 또"는 '클레멘타인' 노래를 다시 불러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못 들은 척하고 '과수원 길' 노래인 "동구밖 과수원길~"을 부르려니 또다시 손주가 "이거 아니야, 이거 아니야" 하며 손사래를 친다.
손주의 말을 듣고는 또다시 못 들은 척하고 '스와니 강' 노래인 " 머나먼 저곳~"을 부르려니 손주가 부르지 말라고 소리친다. "허허! 고놈 참 이상한 놈이네"라고 하면서 다시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로 이어지는 '클레멘타인' 노래를 부르니 손주가 가만히 들으면서 내 몸에 기대어 잠을 자려고 한다.
손주가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막는다. 손주는 노래의 첫 소절만 듣고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으면 "땡"을 치는 것처럼 곧바로 "이거 아니야"란 소리가 튀어나온다.
손주가 전국노래자랑의 "땡"소리보다 먼저 "이거 아니야"란 소리를 외치는 것 같다. 그러니 노래 한곡을 가지고 손주를 위해 반복적으로 불러줄 수밖에 없다.
그간 손주의 낮잠을 재우기 위해 트로트나 동요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불러주었는데 노래 가운데 유독 손주가 좋아하는 노래가 생겼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다.
손주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한 이십여 분 정도 지나면 잠을 자는데 이십여 분 동안 다른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클레멘타인' 노래만 반복적으로 불렀다. 그 노래를 한 열 번 정도 부르고 나자 손주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겨우 두 돌이 되어가는 손주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주문하니 손주를 위해 불러 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내가 불러주는 노래라도 들으면서 손주가 잠을 자니 안 불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주가 커서 어떤 노래를 좋아할지는 모르지만 손주와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한 시절을 보내는 것도 추억이자 인생의 좋은 시절이 아니던가. 다음에는 손주를 재울 때 무슨 노래를 불러서 재워볼까.
최근 손주로 인해 잊어버린 노래와 가사를 다시 듣고 외우면서 맹연습 중이다. 노래가 손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와 즐겁게 웃으며 불렀던 것을 손주가 기억이라도 해주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