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에 기운 바람결

by 이상역

여름의 한낮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말복이 지나면서 더위도 바람도 한풀 꺾였다. 바람은 계절의 절기를 넘기가 힘든 것인지 어느새 아침과 저녁에는 바람결이 소슬해졌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자 바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늘함을 동반하고 불어온다. 덥다 덥다 하던 여름도 이제는 버티기가 힘든지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가 보다.


계절은 잠시도 정체하지 않고 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만 간다. 세월은 나를 두고 떠나가려 하는데 나만 저 세월을 바라보며 못 잊어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바람의 기운이 수그러들자 가을이 벌써 저만치에서 머뭇머뭇거리며 걸어온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러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가고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 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와 같이 처신해야 한다. 자신이 지은 죄가 있으면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하고 죗값을 받는 것이 정상인데 세상을 향해 거칠게 반항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바람이 말복이란 호된 시어머니를 만나면서 스쳐가는 결이 달라졌다. 말복 다음의 절기는 처서다. 내주에 처서가 다가오는데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한 기운에 파리나 모기의 극성도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 새벽녘에 매미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어디선가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매미가 세상을 향해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것은 자기 짝을 찾기 위해서다. 죽기 전에 다음 세대를 이어가기 위한 짝을 찾아야 하는데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서럽게 우는 것이다.


처서 이야기가 나오니 여름이 벌써 다간 것처럼 느껴진다. 하기사 아침과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새벽녘에는 바람결이 약간 차서 곁에 있는 이불을 슬그머니 당겨 덮어야 할 정도다.


올해는 그나마 태풍이 오지 않아 걱정이 덜하다. 비가 폭탄 터지듯이 몇 군데 내리는 것으로 태풍을 대신한 것인지 태풍 소식이 잠잠하고 뜸해서 다행이다.


아침저녁에는 바람이 서늘해졌지만 그래도 산에 올라갔다 오면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낮 기온은 뜨겁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해야 들녘의 과일이나 곡식이 알차게 여문다.


과일이나 곡식은 서늘한 바람과 찬 기운을 쏘여야 맛이 깃든다. 과일이나 곡식의 맛은 햇볕도 중요하지만 서늘한 바람이나 대기의 영향을 받는다.


자연의 기운을 모두 모아야 한 톨의 쌀이 나오고 한 알의 과일이 탄생한다. 그 오묘한 솜씨는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고 따라갈 수도 없다. 자연의 맛과 인공의 맛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말복이 지나며 바람결이 차가워진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그런 이치를 받아들여 과일과 곡식은 맛을 들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바람결이 기운다고 좋아하는 것은 과일과 곡식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지니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좋은 계절이다. 올 가을에는 다른 것은 제쳐두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설악산이나 찾아가서 가을바람이나 실컷 쏘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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