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거나 뛰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긴다. 서로 다툰 사람이 손을 잡는 것은 화해의 의미이고, 연인 간에 손을 잡는 것은 관계의 첫 마음을 여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거나 할아버지가 손주의 손을 잡는 것은 자손이란 핏줄의 친밀함과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본 것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십여 리 길을 걸어가면 서다. 고향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꽤 멀었는데 그때 아버지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 후 아버지의 손을 잡았던 기억은 장날마다 늦게 오시는 아버지 마중을 가서 술을 드시고 계실 때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모시고 오면서 간간이 손을 잡고 걷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구척 장신에 키도 크고 손도 켰다. 그때 내 손은 어린아이 손이라서 아버지 손에 반의 반도 들어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손을 잡았던 기억이 잊히지 않고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요즘 손주 보러 딸네 집에 가는데 손주가 말도 늘고 움직임도 빨라져서 밖에 나가 놀 때 항상 주의해야 한다. 손주는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자고 하면 내 손을 뿌리치고 냅다 달아나곤 했다.
그런 손주가 먼저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자며 내민다. 그리고는 뛰기 시작하면 손주의 보폭에 맞추기 위해 빠른 걸음이나 천천히 뛰면서 따라간다.
두 돌이 되어가는 손주가 어른처럼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자기가 혼자 걸어가겠다며 내 손을 뿌리치곤 했는데 이제는 자기 손을 잡고 함께 가자며 동행의 손을 내미니 그런 모습과 행동이 기특하다.
손주는 손을 잡고 걸어가다 힘이 들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할아버지! 담이 힘들어, 안고 가"라고 말한다. 손주가 손 잡고 가자며 손을 내미는 것도, 힘들면 안고 가라는 것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손주의 낮잠 재우는 것을 도와주는데 손주는 낮잠 자고 일어나 옆에 엄마가 있으면 얼굴을 바라보고 방긋방긋 웃으며 "깼어! 잘 잤어요. 엄마가 있었네"라고 말한다.
어제는 모처럼 두 딸과 사위와 함께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하다 손주가 밖에 나가자고 해서 안고 나가 놀다 다시 식당에 들어가면서 이쑤시개를 집으려 하자 손주가 "먹을 수 없어, 먹을 수 없어"라고 말하길래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저녁 먹기 전 손주와 아파트 단지를 걷다 참매미 한 마리를 잡아 건넸다. 그러자 손주는 손에 매미를 잡고 나를 보며 "하늘로, 하늘로" 하길래 손주에게 날려 보내라 했더니 매미를 놓아주며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자라는 아이의 성장속도가 빠르다더니 나날이 성장하는 손주를 바라보면 웃음꽃이 피어난다. 게다가 손주의 단어 구사 능력도 몰라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생각 이상의 말을 해서 간간이 놀라기도 한다.
사물의 이름과 숫자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하늘에 새가 날아가면 "새가 날아가네"라고 말한다. 또 하늘에 해가 보이지 않으면 "해가 없네"라고 말하면 내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해 준다.
손주의 말과 행동과 움직임이 나날이 성장해 간다. 그런 손주의 말과 몸짓과 행동을 바라보며 같이 놀다 보면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불끈불끈 솟아난다.
내가 손주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보호해 주고 동행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주려는 것이고, 손주가 내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의지해서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고사리 같은 손이지만 내 손과 손주가 잡은 손 사이에는 가족이란 핏줄과 정이라는 따스함이 깃든 사랑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그 징검다리에 의지해서 끈끈한 정과 사랑을 나누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