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한낮에는 무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다. 동광로의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가로수가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짙은 녹색에서 엷은 연두색으로 변신을 서두른다.
가을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틈새를 찾아 하나하나 곁으로 오는 것 같다. 가로수뿐만 아니라 산에서 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나뭇잎도 색깔이 엷어졌다.
아침마다 그악스럽게 울어대던 참매미가 술을 한잔 마신 것인지 소리가 늘어졌고 애매미 울음소리만 도드라져 들려온다. 자연은 변신을 서두르는데 나만 변신할 생각이 없는 듯이 앞만 보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사람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나뭇잎처럼 엷어지거나 온갖 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은 변하는 게 없고 겉에 입는 옷만 길어지고 두터워질 뿐이다.
구봉산과 승상산을 등산하는데 한여름보다 땀도 덜나고 걷기에 한결 좋아졌다. 계절의 변화는 참 신기하고 신비스럽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아침에 등산을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긴 옷을 찾아 입고 나오는 모습에서 자연에 기대어 사는 것은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올봄에 명일동 싱크홀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고지점 옆을 지나 승상산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차량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가고 지나오는 모습이 분주하기만 하다.
사고 지점은 구봉산과 승상산을 가로지르는 동광로 교차로 못 미쳐다. 사고 이후 주유소는 불을 끄고 문을 닫은 채 그대로 있고, 꽃집은 영업을 하고 있다.
사고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세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평소처럼 사는 사람의 모습이 그리운 계절이다. 계절은 시계추를 따라 변해간다지만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어떤 사고든 사고를 일으킨 원인자와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인자나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지 않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별별 사고가 일어나도 피해자만 억울한 세상이다.
호주는 음주운전 처벌에서 술을 판 사람은 80% 음주한 사람은 20%의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 따라서 호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술을 팔 때 운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술을 판다.
술을 마신 운전자가 음주운전에 걸리면 식당 주인은 술을 판 원인자가 되어 80%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도 이런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의료사고든 씽크홀 사고든 원인자와 가해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피해자는 목숨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원인을 증명하라는 나라나 문화가 어디에 존재할까. 아마도 후진국에나 존재하는 후진적인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입법안이나 법을 개정할 때 사고에 따른 증명이나 처벌에서 원인제공자와 가해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문화로 바꾼다면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적어지고 보다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로 바뀔 것이다.
나무가 가을에 나뭇잎 색깔을 변화하는 것도 같은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변해 가는데 사람이 사는 세상만 제자리를 걷는다면 살만한 곳이 아닌 불평과 불만이 기득찰 수밖에 없다.
아울러 우리 문화를 바꾸려면 계절의 변화처럼 한꺼번에 바꾸어야 한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할 수 있다. 누구나 절차와 과정을 거쳐 정당한 자리를 얻는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참매미 울음소리가 늘어지는 것도, 척박한 곳에 자라는 나뭇잎이 엷어지는 것도 모두가 계절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자 순응이다. 우리도 세상의 기준에 맞게 합리적으로 변하는 세상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