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의 애청곡

by 이상역

애창곡은 즐겨 부르는 노래이고, 애청곡은 즐겨 듣는 노래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느냐 듣느냐 하는 관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애청곡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러고 보니 내 애청곡은 무슨 노래일까. 그간 이 노래 저 노래를 들어왔지만 어떤 노래가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고 즐겨 듣는 노래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애창곡은 많은데 애청곡을 선정하려니 마땅한 노래가 생각나지 않는다. 요즈음 손주의 낮잠을 재우기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데 어느 날부턴가 손주가 고향 노래를 불러달란다.


나보다 어른이 부탁해도 노래를 부를까 말까 망설이는데 두 돌이 된 손주가 그것도 노래를 지정해서 불러달라고 요청하니 아니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주가 자신이 잠을 자야 하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지시하는 모양새다. 고향과 관련한 가요나 동요는 많다. 손주의 요청에 목청을 가다듬고 한 곡조 뽑아 불렀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까지 부르니 손주가 "다른 노래, 다른 노래" 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 다시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돌아갈 수 없어서 그리움만 쌓이고~"까지 부르니 또다시 손주가 "다른 노래, 다른 노래" 하며 목소리 톤을 높인다.


나원 참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막는 놈이 다 있네. 세상에서 유일하게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은 소나기도 폭풍우도 아닌 손주뿐이다.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손주에게 넌지시 물어볼 수밖에 없다. "담이야! 무슨 노래를 부를까."하고 물으면 손주가 "고향 땅"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면 "아! 그 노래 불러줄까?" 하면 손주가 "응"하고 대답한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고향 땅', 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


손주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알고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간 손주에게 동요와 트로트를 불러주긴 했는데 이 노래가 자기한테 정서적으로 맞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태어난 고향이 그리워서 좋아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손주에게 "고향 땅" 노래를 불러주면 손주도 마지막 부분을 살짝 따라서 부른다. 노래가 끝부분을 향해가면 할아버지와 손주가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하는 합창하는 목소리로 노래를 끝낸다.


그렇게 손주에게 "고향 땅" 노래를 대여섯 번 부르며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 잠을 잔다. 문제는 내가 손주의 낮잠을 재울 때는 그나마 "고향 땅" 노래라도 불러주며 재우는데 사돈이 낮잠을 재울 때다.


손주가 사돈한테 낮잠 자기 전에 고향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망설일 것이다. 손주가 사돈에게 고향 노래를 불러달라며 소리를 치며 재촉하고 말다툼할 것이 뻔해 보인다.


두 돌이 된 손주가 벌써 애청곡이 생겼다니 놀랍고 기쁘기도 하다. 나는 두 돌이 될 무렵에 부모님이 무슨 노래를 불러주셨을까. 부모님이 무슨 노래를 불러주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장가 정도는 불러주지 않았을까.


손주의 낮잠을 재우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아는 노래도 많아지고 학창 시절 배운 노래를 다시 배우고 있다. 뒤늦게 손주 덕에 노래도 배우고 부르는 시간도 늘어났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을 몹시 기다렸다. 수업을 받던 교실을 떠나 음악실로 음악책을 들고 갈 때면 묘한 설렘과 선생님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손주도 애청곡이 생긴 김에 음악도 좋아하고 재미를 들였으면 한다. 음악이나 미술은 삶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문학이자 예술이다. 예술은 많이 누릴수록 삶의 정서를 깊게 하고 감정을 다스려준다.


사람은 마음에 품은 정서와 감정을 노래나 미술로 나타낼 줄 알아야 한다. 손주도 무럭무럭 자라서 애청곡으로 동요뿐만 아니라 가곡과 클래식도 즐겨 듣는 풍성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손주가 노래를 즐겨 듣는 애청곡을 넘어 할아버지와 함께 애창곡도 함께 즐겨 부를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서투른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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