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계절 가을

by 이상역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어젯밤에는 창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약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반쯤 닫고 잤다. 한낮의 더위도 누그러지고 밤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세월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간다. 참매미 소리는 아직도 여전한데 온도가 어느새 이울고 사색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아침에 구봉산을 올라가는데 풀벌레 우는 소리가 도드라져 들려온다. 여름이 무더위를 몰고 와도 구름이 비바람을 휘몰아쳐도 계절은 자기 갈 길을 뚜벅뚜벅 찾아간다.


승상산 능선 길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방울도 수그러들었다. 선선한 바람과 서늘한 기운이 발걸음에 날개를 달아준 듯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걸었다.


가을이면 봄과 여름 내에 땀 흘려 일한 농작물을 거두어들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부모님과 어깨에 지게를 걸치고 남산 옆에 심은 고구마를 캐러 가고, 논에 심은 벼를 베어 탈곡하던 추억이 생각난다.


농사짓는 농가에서 자랐으니 계절이 바뀌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면 무엇보다 농사일이 걱정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시골에서 보냈으니 주어진 환경이고 피할 수도 없었다.


농사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종일 몸을 움직여서 일해도 허리를 펴서 잠시 쉬려고 하면 다른 일이 기다린다. 농사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농가에서 자란 덕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 알아서 했다. 비를 드니 마당을 쓸라 하는 말처럼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일을 누군가 시키면 힘도 빠지고 하기가 싫어진다.


시골에서 가을이면 밭이나 논에 수확해야 할 농작물이 많다. 밭과 논에서 자란 농작물을 거두어들이고 남은 뒷정리는 겨울까지 해야 했다.


모두가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몸은 그 시절을 기억하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적응하고 기억하며 다.


지난 일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계절이 바뀌거나 때가 되면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슬그머니 떠오르며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계절이 순환할 때마다 살아온 흔적을 더듬게 하고 추억을 더듬어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어느덧 내 나이도 이순의 중반에 이르렀다. 직장도 물러나고 삶에서도 뒤로 물러나니 다가오는 시간과 순간이 그저 고맙고도 감사하다.


산사를 지나갈 때마다 들었던 탐욕도 벗어버리고 성냄도 내려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아가라 하는 소리와 의미가 새록새록 짙어지는 계절이다.


나이 들어 직장에서 승진할 것도 아니고 돈을 벌러 뛰어다닐 처지도 아니다. 그러니 욕심을 낼만한 것도 성을 낼만한 것도 없다. 흐르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머물 것은 머무르게 두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그동안 인생을 바쁘게 살아왔다. 고향을 떠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근 사십여 년이 되었다. 비록 내보일 것 없는 삶이지만 나름 바쁘고 고달프고 애달프게 살아왔다.


올 가을에는 탐욕도 성냄도 내려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아가고 싶다. 도시에서 그런 삶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산책과 사색을 즐기며 부평초처럼 세상을 부유하며 느리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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