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by 이상역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가는 세월처럼 물과 바람도 형상은 없다. 물은 가는 길을 막지 않으면 물길을 만들어 흘러가고, 바람은 길을 막든 말든 거칠 것 없이 세상을 향해 불어 가고 불어온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가을이 되니 마음에 고독이 들어차고 삶의 무게감도 높아만 간다. 계절은 낯빛을 바꾸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태양의 정수리를 돌아가며 태업을 감아댄다.

물과 바람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근원을 알지 못하니 결과도 모르고 원인과 결과를 모르니 물은 물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무한 세상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것 아닐까.


물은 낮은 곳을 좋아해서 아래를 향해 흘러간다. 누군가 가는 물길을 막으면 다른 길을 찾거나 한 곳에 머무르며 때를 기다리다 다시 갈 길을 열고 흐른다.


바람도 형상이 없으니 그물에 걸리지 않고 거칠 것 없이 불어 가고 불어온다. 누군가 바람이 가는 길목을 막으면 틀어지고 갈 곳이 없으면 머물지 않고 바로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이 세상에 흔한 것이 물과 바람이다. 그러나 흔한 것이 넘치면 재앙으로 변한다. 물과 바람이 재앙이 되는 순간 괴물로 형상을 바꾸어 휘몰아친다.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고요하던 물과 바람도 세상의 모든 것을 휩쓸고 갈 기세로 거칠 것 없는 악마와 같다. 사람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평소처럼 고요함이 오고 갈 때는 아무 일이 없지만 고요함을 넘어 과하게 넘치면 세상살이가 험해진다.


물은 색깔이 없어 무슨 색이나 받아들이고, 바람도 형상이 없어 그물에 걸리지 않고 움직임이 자유롭다. 물과 바람이 형상이 없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의 형상을 없애려면 자신의 본체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 사는 삶이 괴롭고 힘들다면 물과 바람처럼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겨야 한다. 그 흐름에서 괴로운 원인이 무엇이고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도 언젠가 우주라는 영원으로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이 우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우주에 존재하는 법칙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지구에서 시작되듯이 물과 바람도 지구에서 시작되고 흩어진다. 내 마음이 고요한 것은 나로 인한 것이고 물과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것도 나로 인한 것이다.


삶은 슬픔과 절망과 아픔을 만나기도 하지만 기쁨과 희망과 행복을 만나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물처럼 바람처럼 막힘과 부딪힘 없이 고요하게 살아가는 삶.


그런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어 나중에 우주로 여행 갈 때 자유로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날이 찾아온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고요하게 창문을 열어젖히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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