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번잡한 마음과 시간에서 벗어나 호젓하게 걷는 여유로움이다. 산책은 동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즐거움이 증폭되거나 감소된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산책하는 즐거움은 달라진다.
오월은 생명의 의지가 새록새록 샘솟는 계절이다.
공휴일에 느긋한 마음으로 소풍을 나섰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이십 분 정도 걸리고,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 가면 내려야 할 역이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사무실로 가는 길은 세 갈래다.
하나는 흙으로 다져진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갈하게 보도블록이 깔린 가로수로 길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방으로 난 길이다. 운동장으로 가는 길은 빠르지만 동행하는 친구가 없다. 이에 비해 가로수나 제방으로 가는 길은 은행나무, 느티나무, 플라타너스, 느릅나무 등이 동행한다.
어떤 길로 갈 것인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흙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흙으로 다져진 길을 선택해서 가고, 나무를 좋아하고 가로수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나무가 반겨주는 길을 선택해서 간다.
사람은 은연중에 자신이 경험한 익숙한 것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그것은 선택한 자의 몫이고 가지 않은 길은 언제든 다시 선택해서 가면 그만이다.
오늘은 평소 다니지 않던 제방 길을 선택했다. 제방 길에 들어서자 아카시아에서 코를 자극하는 진한 냄새가 풍겨온다. 모처럼 아카시아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자 머리가 맑아진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삶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싱그런운 아침이다.
직장에 출근하는 목적을 가슴에 품고 걸어갈 때와 품지 않고 가는 느낌과 감정이 사뭇 다르다. 목적을 가슴에 품고 걸어갈 때는 마음이 무겁고 주변의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목적이 사라지자 같은 길을 걸어가는데 마음이 가볍고 주변의 사물이 눈에 확연하게 들어온다.
가을날 햇볕이 따사로워 나들이 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휴일에 아내와 가벼운 등산을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해가 뜨는 방향에 남한산이 우뚝 솟아 있다. 남한산은 능선이 가파르지 않아 등산하기에 좋다.
아내를 차에 태우고 위례의 남한산 밑에 자리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어깨에 둘러메고 등산용 지팡이를 손에 움켜쥐고 청량산 대원사 방향으로 올라갔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대원사를 지나 옥천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계단을 밟고 가는 직선 길이고, 다른 하나는 에둘러 가는 곡선 길이다. 아내와 나는 직선인 계단 길을 선택해서 올라갔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숨이 턱턱 막히고 등에서 땀까지 솟아난다.
가을날 숲 속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다. 고요한 숲을 천천히 거닐면 마치 산사에 들어선 것처럼 머리가 맑아진다. 가을숲 아래로 햇볕을 받은 도시의 건물에서 은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모습이 마치 연어의 은빛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산속의 숲길을 따라 저벅대며 걸어가자 등에서 땀이 솟아난다. 약수터에서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영춘산 입구에 도착해서 벤치에 앉아 쉬는데 남한산의 능선과 7부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지나간다.
벤치 옆 도로에는 차들이 남한산을 향해 쉴 새 없이 올라간다. 간단한 휴식을 마치고 올라온 길 반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숲의 곳곳에는 지난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산의 비탈진 곳에서 나무가 생존하려면 뿌리를 튼실하게 키워야 한다. 나무가 비탈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태풍이나 비바람에 쓰러지고 만다. 바람은 나무의 생존을 키워주는 시어머니다.
숲에서 자라는 참나무가 둥치를 미끈하게 쭉쭉 뻗은 모습이 우람하고 멋지다. 가을날 숲 속을 거닐면서 삶의 이치도 배운다. 특히 비탈에 선 나무를 바라보면 깨닫는 것이 많다.
그리고 한 둥치에서 서너 개의 나뭇가지가 올라와 아름드리로 성장한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 서너 개 둥치가 자라라면 비바람에 버티고 양분을 서로 나누는 양보와 희생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가을이 따스한 햇볕과 단풍으로 물들며 영글어 간다.
오랜만에 아내와 등산을 해본다. 직장에 다닌다고 가정에 소홀했는데 무던하게 참아주고 견뎌주는 아내가 고맙다. 그런 아내와 가을날에 산에 올라가 등산하니 삶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가볍고 발걸음에 따뜻함과 포근함을 한껏 느껴본 산행이다.
새벽 동이 트기 전 산책은 온 세상이 고요하고 적막하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반겨주는 것은 손톱 같은 달이다. 달빛이 아삼아삼 비추는 길을 걸어가면 어두운 사위가 마중 나온다.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걷다 보면 제천천에 다다른다.
천변에 들어서서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면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꿈틀댄다. 나는 저녁보다 아침에 산책을 좋아한다. 제천천에는 자전거 길과 인도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실개천이 흐르는 천변을 걸어가면 제방 너머에서 단전 치기 하는 아주머니들의 힘찬 구령 소리가 들려온다. 제천천은 방축천과 만나 금강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이다. 물이 합수되는 지점에 이르면 희미하던 건물 윤곽이 드러나고 더 넓은 하천이 나온다.
적막한 밤의 터널을 이어주던 가로등이 고개를 떨구며 밤과의 이별을 고한다. 가로등이 고개를 떨구면 밤과 낮이 충돌하면서 어두운 세상이 사라지고 밝은 낮의 기운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천변을 따라 걸어가면 하늘에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몸의 각종 세포를 팽창시킨다. 새벽에 붉은 기운이 물들면 몸은 선선한 기운으로 채워지고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아오르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낮은 어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밤이 비워준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다. 밤과 낮은 서로 비워주고 채워가며 교대하는 낯선 손님이다. 태양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이 세상 누구나 분별하지 않고 온 누리에 빛과 밝음을 선사한다.
태양을 등에 지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면 출발했던 지점이 나온다. 새벽 산책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다. 삶이 태어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듯이 붉은 태양도 일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도돌이표다.
새벽, 미명, 붉은 기운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낯섦과 신선 함이다. 삶의 소중한 순간은 홀로 걷는 새벽길에 만나는 황홀함이다. 그런 순간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만나는 신명 나는 삶이 그립다.
새벽은 여럿이 맞이하는 것보다 홀로 오붓하게 맞이해야 신선하다. 번잡하고 복잡한 것보다 단출하고 호젓하면 걷는 걸음에 사색도 깊어지고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힘과 즐거움은 배가 된다.
산책은 삶에 새로운 윤활유를 제공하는 근원이다.
봄과 가을에 걷는 즐거움은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산책이다. 신록의 계절에 주중에 바쁘게 걷던 출근길을 공휴일에 홀로 걸어가면 가는 길이 새롭고, 가족과 등산은 가정에 행복과 내일의 희망을 심어준다.
그리고 가을날에 홀로 새벽길을 걸으면 온 세상이 나를 기다리는 듯한 착각과 세상을 다 가진듯한 마음에 사색과 생각의 강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