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에 대한 단상

by 이상역

오늘은 절기상 추분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절기이고 오늘 이후부터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기 시작하는 계절의 분기점이다.


밤이 점점 길어진다는 의미는 들녘에서 자라는 곡식과 과일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다. 낮에 햇볕을 밭은 곡식과 과일은 밤에 기온이 낮아지면서 익어가고 맛과 빛깔은 달라진다.


추분이 되자 밤공기가 서늘해서 창문을 열고 잘 수가 없어 닫고 자야 한다. 절기는 그냥 계절의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 계절이 여물어가고 사람에게 분별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추분의 절기가 지나면 산자락의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 알밤도 맛이 들고, 감나무에 달린 감도 서서히 주황색을 띄우며 영글어가다 붉은색의 홍시로 변한다.


추분은 한자로 추분(秋分, 가을 추, 나눌 분)인데 '가을을 나눈다'는 의미다. 가을의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앞뒤를 나누는 절기라는 뜻이다.


아침에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구봉산에 올라갔더니 바람이 서늘해졌다. 이제는 반바지에 반팔옷은 벗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살갗에 와닿는 바람이 서늘함을 넘어 쌀쌀한 기온이 느껴진다.


추분이 지나면 들녘과 산자락의 녹색 물결이 확연이 달라진다. 곡식은 단단하게 제 빛깔을 드러내며 여물어 가고 나뭇잎은 서서히 울긋불긋 한 단풍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 고향에 들렀다가 친구 딸 결혼식에 갔다 왔다. 고향에 가서 어머니와 잠깐 인사를 나누고 산자락에 올라가서 밤도 주웠다.


구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건강하게 고향을 지키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고 가슴은 따뜻해졌다. 어머니에게 막내 결혼과 관련 관련한 것을 말씀드렸더니 좋아라 하시며 결혼식을 잘 치르라고 하셨다.


고향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편안함과 안락함이다. 고향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머니를 만나면 고향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그래서 고향이 좋은 것일까.


고향 입구의 비석거리 위에 차가 다니는 도로의 일부가 무너져서 도로가 유실되었다. 차가 다닐 때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조금 위험해 보인다. 고향의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 없이 그대로다.


고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야 고향이란 생각이 든다. 고향이 너무 변하면 고향 같지 않고 타향에 간 기분이 들어서 서먹서먹하지 않을까.


고향에서 볼 일을 보고 결혼식에 가다 아랫마을에 사는 친구의 하우스에 잠깐 들렀다. 친구의 말이 올해는 너무 더워서 방울토마토 수확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방울토마토가 웃자라고 순 치는 시기를 놓쳐 수확은 하는데 전년보다 수확량이 줄었단다. 땅콩을 캐고 방울토마토를 일주일에 한 번씩 따서 파느냐고 몸이 바쁘단다.


친구와 하우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결혼식장을 찾아갔다. 고향에서 청주로 가는 길도 많이 달라졌다. 진천에서 청주로 가는 길이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플라타너스가 사라졌다.


길가에 선 플라타너스를 바라보면 고등 시절 학도호국단에서 학교를 대표하여 '조국순례 대행진'에 참석하여 진천에서 청주까지 행군을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마다 다섯 명이 차출되어 약 오백여명의 학생이 모여 하루 동안 교련복을 입고 각반과 수통을 차고 목총을 들고 걸어갔던 시절이 생각난다.


고등 시절 추억을 생각하며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친구의 딸 결혼을 축하해 주고 다른 친구들과 피로연 장소로 이동했다.


결혼식 피로연은 어디나 뷔페음식이라 서울이나 청주나 비슷비슷하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차를 운전해서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의 절기처럼 인생도 돌고 도는 삶이 아닐까. 차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길을 나서든 일을 마치면 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가는 길에 새로운 길도 만나도 친구도 만나는 것은 절기를 만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의 절기처럼 내 인생의 절기도 추분을 맞아 가을의 아름다운 햇빛과 기온을 받아 울긋불긋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알차게 영글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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