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계절

by 이상역

수확의 계절 가을이 되면 전국 지자체나 학교마다 행사를 벌인다. 지자체는 지역 특성에 맞는 축제를, 학교는 학부모를 초대하여 운동회를 개최한다.


구봉산과 승상산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초등학교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교문에는 '한마음 운동회'라는 플래카드까지 걸어 놓았다.


지자체 축제나 학교 운동회는 한해를 결산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지역 축제는 한 해 동안 농사나 특산물의 결실을 모아 행사를 벌이고, 운동회는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에 대한 징표를 드러내기 위해 개최한다.


초등 시절 운동회가 생각난다. 시골의 운동회는 학교 주변 마을의 축제나 마찬가지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같은 학교를 졸업해서 운동회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졸업생과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아이들은 청백으로 나누어 학년별로 달리기나 오재미 던지기나 기마전으로 승패를 가르고, 졸업생과 어른들은 마을 단위로 게임을 해서 승자를 가르는 형식으로 운동회를 진행했다.


운동회 마지막은 마을을 대표하여 참가한 마라톤 선수의 달리기가 백미를 장식했다. 그리고 개별 점수를 합산하여 총점수로 학생 팀과 마을을 선정해서 상장을 수여하고 부상을 주었다.


초등 운동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점심때 어머니가 싸 온 점심이다. 운동회 때는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특별한 것을 먹는 날이기도 하다.


학교 계단이나 플라타너스 아래서 어머니가 싸 온 점심을 형과 동생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동회 특별한 음식이라야 밥 외에 밤이나 고구마나 옥수수나 사이다와 같은 음료수를 마셔보는 것이다.


요즈음 초등학교 운동회 때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밤이나 고구마 등을 싸가면 아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피자를 시켜 먹는지 아니면 김밥을 사서 가져 가는지 궁금하다.


지자체나 학교에서 개최하는 축제나 행사는 특성이 다르다. 어떤 행사가 되었든 행사의 성격에 맞는 계절의 색깔과 맛과 멋이 잘 드러나야 풍미를 더해준다.


어떤 행사든 너무 과하거나 왜소해서도 안 된다. 행사는 손님을 초대해서 개최하는 것이라 의전이나 손님을 위한 배려에 특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사실 행사를 주최하는 측의 준비나 진행이나 손님 접대는 끝이 없다. 행사는 잘해야 본전이고 조그만 실수를 하거나 부족해도 욕을 먹는다. 그렇다고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축제나 운동회나 행사가 끝나면 행사업무를 맡은 담당자만 힘들다. 현직에 근무하던 시절 장관이나 총리를 모시고 몇 번의 행사를 주관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말도 많았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가을을 가을답게 빛내주는 것은 축제와 운동회다. 그런 행사가 점점 특정한 사람의 행사로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행사는 국민이면 누구나 참석하는 행사로 추진해야 한다.


사계절에서 삶을 빛나게 계절은 가을이다. 풍성한 계절에 축제나 운동회가 일부 주민이나 학생이 참여하는 행사가 아닌 우리 모두가 즐기고 먹고 나누는 행사가 되어야 진정한 축제로 승화된다.


행사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국민이면 한 두 개쯤 행사에 참여하여 즐길만한 축제나 운동회는 없는 것일까. 사회의 역할은 움추러드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형태로 행사가 추진되어야 한다.


가을은 행사로 인하여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사가 가을에 이루어져 나날이 성장해 가는 것이다. 사람은 계절의 덕을 보았으면 그 일부는 사회나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행사의 근본 취지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만국기를 달아 맨 것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축제가 아니라 학교 주변에 사는 주민 모두의 축제임을 알려주기 위해 운동장에서 펄럭이는 것이다.


운동회를 하는 학교를 지나가든 지역 축제 장소를 지나가든 나그네가 지나가면 손님처럼 맞이하여 대접하는 것이 행사의 취지다. 그런 행사가 언제쯤 문화로 정착하게 될지 그날이 마냥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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