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그리움

by 이상역

가을날의 햇볕이 따사롭기만 하다. 며칠 전만 해도 햇볕이 무더워서 피해 다녔는데 이제는 햇볕을 따라 몸을 움직이게 된다.


가을이 되니 몸도 무거워지고 마음도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여름날에는 몸도 마음도 기댈 곳이 없었는데 가을이 되자 몸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가을의 햇볕이 따뜻할수록 안보다 밖으로 나가려는 힘이 강하게 작동한다. 가을빛이 몸에 좋다고 해서 그런 것일까. 봄보다 가을빛은 저물어 가는 계절의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강도가 낮아져서 더 그리운 것 같다.


계절의 바람을 따라 시간은 구름을 타고 둥실둥실 어딘가로 떠내려간다. 가을 하늘이 쪽빛에 물들어 높아만 간다. 가을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시간은 마디게 다가오고 흘러간다.


가을의 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한 햇살이 그립고 황금들녘에서 여물어 가는 누런 벼 이삭도 보고 싶다. 풍요롭고 넉넉한 들녘을 바라보면 가을에 곡식을 거두워 들이며 미소 짓는 농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벼를 베러 다니던 기억이 난다. 가을이면 친구 대여섯이 어울려 돌아가며 품앗이 형식으로 벼를 베어 주러 다녔다.


베기 전날 친구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아침부터 낫을 들고 일꾼들과 함께 벼를 베러 갔다. 낫으로 벼를 베는 작업은 줄을 맞추어 베어야 한다.


논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자기가 벼를 베는 줄에 들어가 벼를 베기 시작했다. 종종 누가 먼저 작업을 끝낼까 시합을 벌이던 추억이 생각난다. 벼를 베는 작업도 힘을 쓰다 보니 허리가 아프다.


벼를 베다가 중간중간에 허리를 펴고 쉬며 누렇게 익은 벼를 바라보면 마음이 풍성해졌다. 그 시절은 콤바인이 없어 낫으로 사람이 일일이 벼를 베었다.


그때 벼를 베러 다니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친구들과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논에 들어가 벼를 베던 추억은 아직도 눈가에서 아른거린다.


친구들 중에 몇 명은 소식을 알지만 나머지 친구는 고교 졸업 후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아가는지 소식도 듣지를 못했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미로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눈앞에 사람이 보이고 종종 만나야만 그 사람의 삶의 행로를 알게 된다.


아무리 학창 시절에 친했던 친구도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까맣게 모르고 지낸다. 이런 것을 두고 인생이라고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녁에 서산을 물들이며 해넘이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이 생각나고 곁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벌건 노을이 되어 눈앞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가을은 지난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추억을 더듬게 되는 것 같다. 졸업 후 만나지 못한 친구가 보고 싶고 저 세상으로 떠나간 친구도 보고 싶고 그립다.


가을빛에는 따뜻함과 그리움이 깃들어 있고, 저녁노을에는 친숙함과 익숙함이 배어 있다. 오늘은 다른 것은 제쳐두고 그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리운 옛 노래나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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