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자전거를 따릉이로 부른다. 자전거는 전철역이나 버스 주차장 등에 세워 두고 시민들이 대중교통이나 직장에 출퇴근할 때 주로 이용한다.
그런데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좋은데 이용 후 아무 데나 두고 가서 문제다. 오늘도 구봉산에 등산하러 가는데 길 건너 아파트 단지 인도나 교차로 주변에 노란색(빨간색, 파란색) 자전거가 아무렇게나 서 있다.
아침에 길을 걷다 인도에 노란색 자전거가 서 있으면 통행에 방해받지 않게 옆으로 옮기거나 피해서 간다. 자전거를 이용하고 아무 데나 세워 두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심정일까.
초등 시절 고향에서 홀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고향은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비탈져서 올라올 때는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와야 한다.
키가 작아 자전거 안장에 올라갈 수 없어 자전거 페달 위 삼각대를 이용한 옆구리로 타는 법을 배웠다. 오른손과 팔꿈치는 안장에 걸치고 왼손은 자전거 왼쪽 핸들을 쥐고 수시로 브레이크를 쥘 수 있도록 잡았다.
자전거 옆구리를 이용해 배우는 것은 내리막길은 타고, 올라갈 때는 자전거를 끌고 갔다. 그렇게 연습하다 어느 정도 숙련이 되자 점차 오르막 길도 자전거를 옆구리로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초등 시절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입학식날 커다란 운동장 옆에 양철지붕 아래로 수백 대의 자전거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시절 시내버스가 없어 대부분 자전거나 버스로 통학했다. 등굣길과 하굣길에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집으로 귀가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 많다 보니 자전거를 팔거나 수리하는 점포도 많았다. 그때는 자전거도 귀하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통학하는 것이 로망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키가 작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읍내 중학교까지는 이십여 리이고 읍내를 가려면 잣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비포장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덩치도 있고 어느 정도 힘도 필요했다. 게다가 잣고개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고 버스 등이 다녀서 매우 위험했다.
자전거를 이용해서 처음 학교에 등교해 본 것은 고등학교 때다. 중학 졸업 후 키가 성장하면서 자전거 안장에 올라가서 타는 것도 수월해졌다.
그 시절 도로나 인도에 누군가가 자전거를 세워두고 가면 곧바로 없어졌다. 자전거도 귀했지만 아무나 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흔한 물건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운영하는 따릉이나 전동킥보드 이용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개인의 물품은 중요하게 여기고 공공물품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 의식이 강한데 따릉이를 공공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출발부터 문제가 있다. 시민들은 이용료를 내고 따릉이나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뿐 지정된 장소에 보관하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따릉이 이용에 어느 정도 소유개념을 도입하거나 지정된 장소에 보관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어야 자기 것처럼 애용하게 된다. 시민의식의 호소보다 보관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효율적인 관리가 아닐까.
학창 시절 자전거를 타다 펑크나 고장이 나면 부품을 사서 곧바로 수리했다. 자전거는 통학에 필요한 교통수단이라 타지 못하면 학교에 갈 수 없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따릉이도 시민이 이용할 때 지정된 장소에 보관하면 할인이나 마일리지 부여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지금처럼 이용자가 아무 데나 세워 두는 문화는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나의 정책이나 제도의 시행이 어려운 것은 세세한 것까지 검토할 수 없고 예측 가능한 문제점을 사전에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릉이나 전동킥보드의 주차 문제는 무질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되어간다.
따릉이나 전통킥보드가 인도에 쓰러져 있어 통행자가 넘어지면 사고가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시민을 위한 좋은 사업을 시행하고 무질서한 주차로 시민이 다치면 그에 대한 책임도 시가 떠안아야 한다.
이참에 따릉이나 전동킥보드 보관에 따른 무질서한 주차 문제를 공론화하여 시민의식을 고양(高揚)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무질서한 주차 문제를 해결하여 보다 성숙한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