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 가을이 즐거운 것은 나무가 키워낸 열매를 줍고 맛보는 일이다. 그중에 알밤을 줍는 재미는 껍질을 까서 먹는 맛 이상으로 풍성해서 기분이 좋다.
신록의 계절 오월에 밤꽃이 피면 산자락 어디쯤에 밤꽃이 피었다는 것을 머릿속에 기억해 둔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밤꽃이 핀 자리를 찾아다니며 알밤 줍기에 나선다.
밤나무 밑에 가서 알밤을 줍다 보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무가 떨구어 준 알밤은 보름에 걸쳐 주울 수 있다.
특히 바람 부는 날이나 비가 내린 이튿날 아침에 알밤 줍기는 특별하다. 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라도 내린 이튿날 밤나무를 찾아가면 알밤을 많이 줍는다.
구봉산과 승상산을 등산하며 여기저기 자라는 밤나무를 찾아다니며 알밤을 줍고 있다. 능선길을 따라 밤나무가 자라는 곳에 가서 밤을 줍다 보면 등산하는 시간을 읽어버린 채 밤 줍기에 열중한다.
그렇게 산자락의 밤나무를 찾아다니며 산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마치 고향의 산자락에 올라가서 알밤을 줍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서 알밤을 줍는 것은 밤을 줍는 것이 아니라 고향의 정과 맛을 느끼기 위해 밤을 줍는다. 알밤이 떨어져 햇볕에 반짝일 때면 고향의 햇살을 만난 것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밤의 단 맛이 덜 난다. 지난해는 밤 맛이 좋아 밤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올해는 밤 맛이 덜해서 밤을 줍는 재미도 좀 덜하다.
밤도 해거리가 심하고 바람과 비와 일조량에 따라 밤 맛도 영향을 받는다. 밤을 주우며 기분 좋을 때는 밤알이 나무에서 떨어져 발끝에 와서 멈출 때다.
밤나무를 후드득 때려가며 밤알이 덜어져 발끝에 와서 멈추면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은 기대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자기 앞에서 일어나면 말을 하지 않지만 기분은 상승한다.
엊그제 승상산을 등산하고 빌라단지 앞을 걷는데 몇 분이 주운 알밤을 들고 걸어갔다. 할머니는 비닐봉지에 밤을 넣어 손에 들고 가고, 할아버지는 바지주머니가 볼록 튀어나오도록 밤을 주워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가져가는 밤은 밤이 아니라 밤나무가 떨군 자연의 결실을 가져가는 것이다. 밤나무가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밤송이가 달려 알밤이 떨어질 때까지 사람이 도와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밤나무는 열매를 맺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떨구어 낸다. 밤나무가 수고와 가치를 따지지 않고 평등하게 베풀어 주는 마음이 고맙기만 하다.
산에 알밤을 주으러 다니는 사람은 정해졌다. 젊은 사람과 아이들은 없고 대부분 나처럼 나이가 든 사람이다. 그들은 알밤처럼 삶을 단단하고 영광의 빛을 내기 위해 살아온 듯하다.
수확의 계절 가을을 가을답게 느끼며 사는 사람은 밤을 주우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밤나무가 떨군 밤을 것을 줍는 것은 낭만이자 계절의 맛과 멋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삶이 건조하고 가슴에 낭만이 사라질 때 밤나무를 찾아가서 알밤을 주워 볼 것을 권한다. 밤나무 아래서 밤을 줍다 보면 삶이 여유롭고 알밤에서 솟아나는 낭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매일 같이 건조한 콘크리트를 바라보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가슴에 산자락에서 자라는 밤나무를 하나쯤 품고 사는 것이 더 낭만적인 삶이 아닐까. 그런 삶을 두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욕할 사람도 없다.
가을은 나무 한그루에 열매 하나에 계절의 풍미와 풍성함을 느끼는 계절이다. 그대의 가슴에는 어떤 나무와 어떤 열매를 품고 사는지 한 번쯤 돌아보며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