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승상산을 오르는데 계곡에서 바스락거리며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겨울에 낙엽을 밟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고개를 쑥 내밀고 바라보니 고라니가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소리다.
승상산에 고라니가 대여섯 마리가 서식하는 것 같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을 오를 때마다 산의 초입이나 정상을 지나 잣나무 숲을 내려갈 때 종종 보게 된다.
겨울에는 산에 먹을 것이 없다 보니 고라니가 점점 민가가 있는 산 아래로 내려온다. 송파에 살 때도 탄천 옆에 조성한 인도를 걸어가다 고라니를 보곤 했다.
등산하면서 고라니를 볼 때면 지난 시절 산토끼를 잡겠다고 동네 형들과 눈 덮인 산에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산토끼를 잡겠다고 막대기를 들고 마을을 둘러싼 산을 한 바퀴 돌았지만 정작 산토끼는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했다.
산에 사는 산토끼나 너구리나 노루 등은 산을 아주 잘 탄다. 그에 비해 사람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산토끼나 너구리나 노루를 잡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덫이나 올무 등을 이용해야 한다.
지금은 덫이나 올무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산짐승을 잡으려면 그들을 이용하지 않고는 잡을 수가 없다. 덫이나 올무도 아무 데나 놓고 잡는 것이 아니라 산짐승이 다니는 길목에 설치해야 한다.
산짐승이 다니는 길을 알려면 산을 자주 올라가야 하고 그들의 습성과 행동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해서 아무나 잡을 수 없었다. 나와 같은 또래들은 토끼나 너구리 대신 덮치기를 이용하여 새를 잡았다.
덮치기는 바닥에 먹이를 뿌려놓고 먹이를 새가 쪼으면 순간적으로 덮쳐 잡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 덮치기를 설치하고 방에 들어가 기다리다 새가 먹이를 쪼으면 줄을 당기고 재빨리 달려 나와 새를 잡곤 했다.
당시 시골에는 먹을 것이 귀해서 고구마나 무 외에 군것질할 별로 없었다. 그나마 참새라도 잡아서 화롯불에 구워 먹으면 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시골에 살던 시절에는 고라니를 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부터 도시에서 고라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도시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 사람의 보호를 받아 개체수가 늘어난 결과이리라.
추운 겨울에 친구들과 화롯가에 모여 앉아 참새를 구워 먹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모두 가버린 추억이 되었지만 등산을 하거나 하천을 걷다가 들짐승을 만나면 옛 추억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비록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산이 가로막힌 곳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고 참새를 구워 먹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정경을 떠올리면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솔솔 피어나는 것만 같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그런 정경과 풍경을 만날 수가 없다. 세상의 인심은 세월 따라 변하고 이기적인 욕망의 분출로 꿈에서나 만나는 일이 되어 버렸다.
휴일에 고향에 가면 옛 시절에 함께 자랐던 어른들이 모두 사라져서 허허롭다. 그 어른들이 살았던 집도 무너지기 직전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많아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타관 땅을 떠도는 도시의 생활은 삭막하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나 모임이 없어 적막하다. 도시에서 생활은 돈이나 이기심 작용으로 다른 사람과 놀거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부터 아침에 운동 삼아 하루에 만보를 걸어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걸었다.
이제는 도시생활에서 유일한 취미이자 운동이자 삶의 전부가 되어간다. 직장을 물러나니 하루가 의미도 재미도 없는 나날의 연속이고 감옥 같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도시는 익명성 보장으로 내가 어디를 다니든 간섭하는 사람도 간섭하는 동물도 없다. 아침에 승상산에서 만난 고라니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가 보든 말든 먹을 것을 주든 말든 때가 되면 한 끼 챙겨 먹고 때가 되면 자고 자기의 공간을 지키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를 닫고 살아가려니 하루가 무료하고 그날이 그날 같은 날의 연속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에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점점 큰일이 되어간다.
세상은 이래저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강물처럼 흘러만 간다. 내가 하루가 무료하다고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강물이나 시간은 소리도 없이 점차 나로부터 멀어져만 간다.
아침에 떠오른 태양이 도시의 서쪽으로 이울고 있다. 태양은 하루도 빠짐없이 뜨고 지는데 나는 지금 어디서 누구를 향해 신세타령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