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의를 하러 가는 날이다. 강의를 하기 위한 준비는 해두었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운동 겸 가벼운 등산을 다녀왔다.
이른 아침에 산에 올라가 강의 진행 방향을 정해 놓고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 나섰다. 강의는 말로써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집에서 전철을 타려면 십여분 이상을 터벅터벅 걸어가야 한다. 전철역을 찾아가는 길에는 도시 변두리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만난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주택가와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식당과 어른을 돌보기 위한 시설과 슈퍼나 세탁소 등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면 커피 볶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점 주인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도시의 골목길은 시골길보다 정감과 정취는 덜하지만 사람이 깃들어 사는 냄새는 배어 나온다. 도시의 삶이 좋은 것은 익명성이다. 나를 스쳐 가는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무엇하러 가는지 물어보거나 알 필요도 없다.
도시는 거리에 자동차나 사람이 지나가면 그냥 지나가는 보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자동차가 왜 지나가는지 사람이 어디에 가는지 궁금해하거나 알려고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내가 어디에 가는지 무심하게 바라본다. 내가 걸어가면 그냥 사람이 걸어가나 보다 하면 그만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골목길을 걷다 보니 도로를 건너야 하는 교차로다. 잠시 후 신호등이 바뀌어 횡당보도를 건너가면 또 다른 골목길이 시작되고 거기에서도 주택가와 상점이 나온다.
골목길은 사람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살아간다. 골목길을 지나갈 때마다 골목을 들여다보면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엿보게 된다.
그렇게 골목길을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병원 건물이 바라보인다. 그 건물을 눈에 담아 두고 걸어가면 드디어 전철역이 나타난다. 이제는 걷는 것을 끝내고 전철에 몸을 얹으면 도시에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전철은 나를 데리고 도시의 지하세계를 안내한다. 컴컴한 동굴을 지나갈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전철 안에 타고 가는 사람들과 간간히 전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어두운 지하세계를 달려가는 전철이 신비스럽다. 내가 위치를 알지 못하는 정거장 이름을 알려줄 때마다 정말로 이곳이 그곳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전철에 몸을 맡기고 가야 할 목적지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전철도 급행 전철이 있는 것이 신비스럽다. 서너 정거장이나 대여섯 정거장을 건너뛰어 서는 급행을 타고 가면 목적지를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간다.
급행 전철을 타고 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갈아타야 할 전철역이다. 안내원의 말을 듣고 전철에서 내려 다른 전철로 갈아타기 위해 역사 안을 오르고 내리면서 힘들게 걸어야 한다.
전철역사는 지하세계의 신천지다. 지하에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먹는 음식점과 무언가를 파는 상점이 붉은 등불을 밝히며 팔고 있는 것을 보면 몸은 비록 지하에 머물고 있지만 마치 지상의 세계를 걷는 것 같다.
그런 지하세계를 구경하며 전철을 갈아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내려야 할 전철역이다. 한 달에 몇 번 찾아오는 길이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강의 가는 길은 강의를 하는 것보다 강의장을 찾아가는 여정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모처럼 손에 가방을 들게 하고 강의 가는 길에 들어서면 가슴에 설렘과 잔잔한 흥분이 들어찬다.
다음에 강의 가는 길도 오늘 걸어왔던 길을 다시 더듬어서 걸어가야 한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의 강의만은 못하지만 나이 들어 강의 가는 길이 새삼 인생의 한 시절을 다시 겪게 하는 것 같아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