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지를 내게 주시니

느려도 괜찮아 6

by 맘이 mom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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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의 주께서 말~씀~ 하신...


마음이 구렁텅이로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상태.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고, 앞으로의 10년이 그려지지 않는 그런 무기력하고 막막한 상태.


늦은 결혼을 하고 늦은 엄마가 되고, 나는 늦게 찐 인생을 살고 있었다. 세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 둘이나 있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가슴이 쪄릿쪄릿한 딸들이 있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를 달래고 얼르고 이해해보려 노력도 해보고, 화도 내 보고 기다려도 봤다. 그런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남편은 또 직장을 쉴 궁리를 했고 그 희망을 실천에 옮겼다.

10년 내내 있던 남편의 직장생활 방황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속상하게 했지만, 이번만큼 마음이 힘든 적은 없었다. 결혼생활 10년! 10년이라는 세월을 바라보며 발전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고 두 아이가 커가고 있음에도 우리의 재정은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들고 있음이 화가 났다. 그 모든 게 남편의 탓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도 힘이 들었나 보다. 저마다의 그릇이 있는데 그는 사람은 좋아했으나 함께 일하고 조율하는 것을 어려워했으며,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든 것을 잘 참아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남편의 결정이 나에게 준 건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려지는 내 자존감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의 바닥이 드러나 도저히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생명의 존귀함도 잊고 그저 순간의 사라짐도 괜찮다 여겨질 만큼 미래가 안 보이고 막막했다. 그 시절 누군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하늘길에 올랐다는 말이 천만번 이해가 갔고, 나 혼자 이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 남겨질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러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구렁 속에 빠지면 앞이 안 보이는 건지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약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지만 그땐 내 존재 자체가 너무 하찮게 여겨졌고 이 모든 선택이 나로 인한 결과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구렁텅이 속에 빠진 나를 보고 자매들이 여행 제안을 했다. 여행을 가고 싶은 의욕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냥 그곳에서 내 가정에서 그와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나에게 큰 일탈이었다.


현재 사정에 맞지 않게 웬 여행이냐 하겠지만 난 살고 싶어 여행길에 올랐고, 그 여행이 나를 좀 세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나의 변화를 지켜보리라 생각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의 햇살이 뜨거웠고, 바다내음은 코끝을 찔렀다. 비행기로 하늘을 오른 나는 해방감을 느꼈고 그냥 그 자체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떠들었고 그래서 웃었다. 여행은 명상과 요가를 할 수 있는 리조트로 잡혀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모든 걸 내려놓고 나 자체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자매들과의 아무 제약 없는 수다와 여행 걸음이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흐른 나의 상황 이야기가 나를 또 울게 만들었고, 언제나 쿨한 언니는 나의 근본적 문제가 낮은 자존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동안 나의 자존심이라 여겼던 일에 있어서의 성과 또한 자존감이 높아지는 행위가 아닌 남에게 잘 보이고자 점수를 높게 얻고자 나를 희생하고 일을 완벽히 해내는 것 또한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머리를 '퉁'하고 맞은 느낌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나를 제대로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현재의 내 상태가 나보다 남을 신경 쓰고 남에게 맞춰져 있음을 깨닫고, 나는 현재 낮은 자존감으로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온전히 나를 세워보리라. 더 이상 남의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한바탕 이야기를 하며 울음을 쏟아내고 난 후 나는 속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를 채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언니가 조용히 듣던 이어폰을 나에게 넘긴다.

아무 말도 없이... 받아 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너는 사람과 달릴 존재가 아니라, 말과도 거뜬히 달릴 존재다."라는 주제의 말씀이었다.

'주님이 너와 함께 하심으로 못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작은 사람 너의 판단과 능력으로 이룰 생각을 앞세워 미리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두려움에 휩싸일 때마다 주님에게 이 메시지를 받았었다.


작디작은 인간의 마음으로 앞이 막막하고, 두려워 울고 싸우고 주저앉으려 할 때에 그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 말라. 내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았거늘 너는 뭘 그리 두려워하느냐. 믿으라 그러면 이룰 것이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


신혼시절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다. 늦은 나이의 결혼에 아이를 빨리 갖고 키우는 게 단 하나의 목표였기에 매일 매달 기다림의 시간이었고 실망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에게 오지 않았고, 나는 또 인간의 미숙한 어둠의 구렁텅이에 마음을 맡겼고 되지 않는 임신에 조바심을 내고 좋다는 한약을 먹고, 혼자서 온갖 검사를 다하고 다녔다. 검사를 받으며 아픔에 울고, 함께 해주지 않는 방관자인 듯한 남편의 태도에 울었다.

그리고 나의 검사가 모두 끝나고, 남편에게 검사를 권했으나 남편은 거절을 했고 이는 나에게 더 이상 이 사람과의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마음으로 예배에서 위로를 구하러 간 교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고 주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을 걱정하느냐, 내 너를 위해 다 준비해 놓았거늘 뭐가 그리 불안하고 조급하냐. 나를 믿고 기다리라."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을 때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그리고 말씀대로 바로 아이가 나에게 왔다. 지금의 내 첫사랑 큰 딸이다. 그로 인해 주님을 더 진하게 느끼고, 감사했으나 육아로 교회를 마음대로 가지 못했고, 신앙이 같지 않은 남편은 교회에 가는 것이나 예배 찬송을 듣는 것조차 싫어해 주님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첫아이 돌 즈음 기적 같은 둘째가 찾아왔다. 그 당시에도 남편은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나는 뱃속에 자라고 있는 새 생명을 확인하자 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이제 막 돌 된 아이와 이제 막 뱃속에 생긴 새 생명을 지켜야 하는데 남편은 나의 조바심과 조급함을 전혀 이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보겠다고 염치없이 주님을 향한다. 두 시간가량의 거리에 있는 성남에 있는 "선한 목자교회"를 임신한 몸으로 왔다 갔다 하며 예배당 안에서 기도하며 울고, 집에 오는 전철 안에서 울고, 다시 우리는 우리 가족은 꼭 잘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남편을 달래 가며 내가 일어나야겠다 다짐을 했다.


"난 꼭 잘 살 거야"

남편이 안된다면 내가 나서리라. 임신한 몸으로 나는 내 사업을 준비했다. 나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야 하기에 이대로 앉아있을 수는 없다. 뱃속에 아이가 하나 더 나올 텐데 그 아이를 또 자라고 있는 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나의 상황 따위는 상관없다 여기고 사업을 진행하려 남편과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고,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시골 영동까지 차를 타고 왔다 갔다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사업을 해보겠다며 찾아오는 친구네 가족을 매번 좋은 잠자리에서 재우고 맛있는 거 챙겨주던 친구는 나의 응원자였다.


그렇게 사업이 거의 준비되어 갈 즈음 집안에서 이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리곤 양쪽 어머님들이 반대하기 시작했다. 배불뚝이 임산부가 어찌 사업을 할 것이며 그 시골에 내려가서 어찌하려 그러냐 많이들 걱정 반 우려반으로 말리셨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살아야 하기에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아이를 낳을 때까지 열심히 하고 다시 아이를 낳고 달리면 되리라 여겼기에 부모님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이 말렸다. 서울에서 내가 사업을 해보겠다 했을 때 계속 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남편은 부모님의 만류를 듣고 나에게 "이 사업하지 말자. 부모님들이 하지 말라잖아." 하고 말을 뱉었다.


그 순간 임산부의 몸으로 몇 달을 남편을 설득시키고 힘들다 소리 한번 못하고 뱃속의 아이에게 "아가 네가 견뎌야 해. 엄마가 좀 바삐 다녀서 네가 힘들어도 참아. 그냥 견뎌." 하며 지내왔던 시간들과 먼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친구에게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치면서도 참아왔던 그 모든 시간들이 떠올랐고, 부모님들의 만류에도 나는 살아내리라 잘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흔들리지 않았던 나의 고집도 모두 부질없게 여겨졌다.


함께 해야 할 아이 아빠가, 그토록 그 모든 과정을 보아왔고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하기 위해 매일 밤 내 맘을 다지고 설득시켰던 그 아이 아빠가 부모의 우려를 잠재우지 못하고 그냥 같은 자리에 서서 툭 내뱉어버린 그 말이 너무 야속하고 김이 빠졌다.


그리고 나는 주님을 밀어냈다.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의 무책임함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나의 노력과 수고를 하찮게 여긴 그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마음을 닫았다.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배부른 며느리가 불안해 잘살아보겠다고 하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이 불쌍하다며 우는 시어머니의 모습에 정이 떨어졌고, 애아빠가 그렇게 혼날까 봐 두려워했던 시아버지마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계실 때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정말 정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주님을 밀어냈다.


주님이 또 나에게 그를 용서하라 하실 것이고, 사랑하라 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주님을 떠났다.


"주님! 저한테 또 저 사람 용서하라 하실 거잖아요. 또 사랑하라 하실 거잖아요. 오래 참고, 견디고, 모든 걸 내려놓으라 하실 거잖아요. 근데 저 정말 싫어요. 내려놓기도 이젠 더 이상 싫고, 용서하기는 더더욱 싫어요. 저 그냥 안 할래요. 그냥 마음껏 미워할래요. 죄송해요. "


그리고 나는 주님을 모른 척 내 마음속 한 귀퉁이 모셔두었다.


그리고 나는 불평과 불만과 부정의 나날들을 보냈다. 마음이 늘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고, 그냥 나를 없애며 살았다. 내 아이들을 위해 내가 못할 것이 없다 여기며 둘째 아이 젖 떼자마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 직장 새활 속에서 어린 두 아이를 챙기는 일과 집안일은 주로 내 몫이었으며 남편은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며 집안일을 나누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부서져도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어느 날 아이 둘을 세 번 수술시키는 일을 겪었다. 의사는 흔하고 쉬운 탈장수술이라지만 조그만 아이 팔에 주삿바늘 꽂는 것도 마음 아팠던 나는 첫 아이를 수술시키며 울었고,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리라 그러면 꼭 성장한 자리에 서있으리라 여기며 버텼다. 그리고 둘째 아이의 탈장 그리고 수술, 그리고 나의 입원과 몸의 이상한 변화들. 이제는 끝났겠지 하고 마음을 놓을 때 둘째 아이의 반대쪽 탈장수술. 나는 다시 무너졌다. 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탈장은 부모탓이 엄마 탓이 아니라지만 나는 딱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더 버티지 말라고 이제는 그만하라고 주시는 메시지인데 내가 못 알아차리고 생떼를 쓰듯 버틴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기 위해 이사를 했다.


멀리 떠나 아이들만을 위해 자연 속에서 편안히 살고 싶었다. 그즈음 내 건강에 또 안 좋은 신호가 계속 나타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와중이었고 아이 아빠에게 이러한 이상증세가 있고, 수치가 안 좋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건네고 결과 발표 날짜를 안내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날, 검사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학부모가 하원길에 조심히 다가와 "선생님, 검사 수치가 거의 그 병에 가까워요. 그러니 결과 나와서 그 병이라고 정확히 나오면 저에게 도움 요청하세요. 제가 잘 알아봐 드리고 부탁드릴게요."

하원 맞이로 바쁜 가운데 나는 정신이 멍~ 했고 이제 막 4살, 6살인 딸들이 떠올라 눈물이 올라왔다.

청천벽력 같았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울었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고 병원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의사는 "다행히 다른 수치들은 안 좋은데 딱! 그 병이라는 수치까지는 아니네요. 그래서 그 병이 아니라고 판정합니다."

너무 감사했다. 너무 감사했고 멍했다. 그리고 그 학부형의 도움의 손길이 과했음을 알았고, 괜한 걱정을 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우선 아니라니 천만다행이다. 앞으로 더 건강에 신경 쓰리라.


그날 저녁 그다음 날 저녁 그다음 주 저녁 남편은 결과를 묻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냥 눈치를 보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결과가 궁금하지 않아? 왜 묻지를 않니?" 그의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했다.

"뭘?" "무슨 결과"

"내가 그때 내가 그 질환일 수 있다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몇 일어날 결과 나온다고 얘기했잖아."

"그래?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럴 수 있는 일일까? 나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넌 나 없이 애 둘 키울 자신 있니? 내가 심각한 병일 수 있다고 했는데 너는 어쩜 그 결과도 궁금하지 않고, 어쩜 내가 그 이야기를 한 사실 조차 까먹을 수 있니?"

남편이 그냥 멋쩍어서 모른 척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화를 냈다.

"까먹을 수도 있지 미안하다는데 왜 계속 화를 내?"


언제나 그랬다. 그는 잘못을 했더라도 미안하다 몇 번 말하고는 바로 풀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냈고,

자신이 잘못은 상관없이 언제나 마지막은 그가 화를 내고 그가 긴 삐짐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랬다.


그날 내 몸이 이상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을 하며, 이렇게 아이돌 볼 사이 없이 정신없이 사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것 같다. 우리 몸 아프면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의 두 번째 탈장 수술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 겹친 그날 내가 남편에게 그랬다.

"우리 그냥 다 내려놓고, 시골 가서 살까? 애들 바라보면서 좀 쉬면서 애들이랑도 마음껏 놀아주고, 돈 조금 덜 벌면 어때. 그냥 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남편은 그날 내가 한 말 중 "쉰다는" 말에 초점을 맞췄고, 그날 이후로 나에게 언제 이사 갈 거냐 언제 쉴 수 있느냐 보챘다. 그걸 보채느라 아내의 마음의 아픔과 몸의 아픔이 잊힌 거다.


참 나 불쌍히도 살았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결혼생활 10년이 되는 올해

남편이 다시 쉼을 가지는 지금. 나는 사실 힘이 들다.


지나간 10년이 어찌 됐든 앞으로의 10년을 잘 살아내고 싶은 나와는 달리 자꾸 주저앉으려는 남편이. 그리고 그와 함께해야 하는 앞으로의 10년이 너무 막막했다. 빛이 안보였다.


그리고 나는 창문을 바라보면 순간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두려웠고, 요리를 할 때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쥐어지는 칼자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나는 자식이 있기에 자식에게 아빠를 빼앗을 권리도 엄마를 빼앗을 권리도 없기에 나는 부모라는 엄마라는 큰 책임을 졌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닥을 쳤고, 여행길에 오르고... 나는 그때부터 다시 일어났다.


온전히 내가 아닌 주님의 힘으로...


내 맘 한구석에 모셔두었던 주님이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나는 전혀 주님을 내 마음에 다시 꺼내드릴 마음이 없었다.

지인의 기도 권유를 그저 열심히 다시 살아보겠다는 그의 다짐이겠거니 나는 그 다짐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라며 그냥 방관했었다.

그런데 주님은 서서히 나를 예배로 이끄셨고, 정말 아주 작은 변화와 참여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첫 온라인 예배를 통해 주신 말씀이 바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의 기적"이었다.


"나는 죽고"

나는 나를 이미 죽였다. 그래 나를 죽이고 온전히 주님께 맡긴다면 두려울 것이 없잖은가

훨씬 마음이 편했다. 눈물이 났다.

그 말을 매번 나에게 주셨으나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제야 이리 바닥을 치고서야

주님 앞에 나를 죽이고 예수로 사는 삶이 무엇임을 알게 만드셨다.

그로 인해 두려울 것 없는 세상을 선물하셨다.

세상 든든한 백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렇게 살면 삶의 기적을 주신 다지 않은가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려놓음"의 의미도 제대로 알게 하셨다.

내 마음의 내려놓음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께 모든 걸 내려놓고 맡기라는 말씀

이제야 나는 그 말의 뜻을 알았다.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행복해서 가슴이 벅찰 때가 많다.

아침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드리며 가슴이 벅차고, 주님이 나와 항상 동행하심을 알기에 감사하며, 상황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가득 찼다. 온 마음이.


그리고 "이 산지를 내게 주시니." "이 가정을 내게 주시니" 이 또한 주님께서 제게 주시는 복음의 자리요 은혜의 자리라는 말씀을 주셔서 나는 이 가정을 탓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사랑으로 대하라 모든 일에 모두에게 사랑으로 대하라.라는 말씀을 가슴에 담아 이 또한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채워지고 나니 요즘 남편의 쳐진 어깨가 보인다. 그가 불쌍히 여겨졌다.

저도 이제 힘이드나보구나. 방황하고 있구나. 걱정하고 있구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구나.

그 모습이 안쓰러워보이면서도 감사하다. 그 고민이 변화의 시작일 것이고 새로운 기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알기에 그 모습이 오히려 감사하다.

그래서 기도한다. 그의 방황이 좋은 결실을 맺게 해달라고.

나는 내 가정을 지켜볼 것이다. 내게 주신 이 산지를 잘 지켜내 볼 것이다. 내가 은혜받은자요. 선택된자이니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지 않은가. 은혜도 모르고 혼자 방황하고 있는 남편의 영혼이 좋은 방향으로 둥지를 틀기를 기도한다.


인간인지라 아직 잘 안되는 부분이 많지만 주님께 맡기며 하나하나 해나가면 분명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제 안 되는 건 주님께 삐대 볼 생각이다.

나에게 아주 든든한 백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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