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른 동화 9
엄마가 이상하다.
요즘 작은 일에도 짜증이고 맨날 우리를 혼낸다. 그랬다가 또 미안하단다. 그리고 또 사랑한단다.
화를 내든지 잘해주든지 하나만 할 것이지 이랬다 저랬다 알 수가 없다. 엄마의 마음을.
"우리 사랑하는 다봉이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음~ 아니야 졸려. 더 잘래."
"우리 다봉이는 할 수 있지요. 일어날 수 있지요. 소중한 사람 얼른 일어나요."
"나 졸리단 말이야. 더 잘래."
"다봉이 학교 가야지. 엄마 기다릴 테니까 스스로 일어나요. 할 수 있지?"
"끄덕끄덕, 쿨쿨"
아침마다 우리 엄마는 자고 있는 나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간지럽히며 깨워주신다.
그리고 내가 안 일어나면....
"야! 박다봉 일어나! 안 일어나? 학교 안 가?"
엄마의 목소리가 온 집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아침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안 먹어? 이제 아침 없어. 안 먹으니까 내일부터 엄마 밥 안차 린다."
그냥 좀 졸리고 아침이라 입맛이 없는 건데 엄마가 밥을 안차려 준단다.
그래도 내일이면 엄마는 밥을 차려주시겠지. 늘 그렇게 말하고 또 까먹고 차려주는 게 우리 엄마니까.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또 깨운다.
"다봉아, 일어나자. 학교 가야지. 귀염둥이 얼른 일어나세요. 내 사랑. 쪽쪽!!"
"잉~ 졸려. 좀만 더 자고 일어날게. 추워서 그래 이불 좀만 더 덥고 있을게."
"그럼 일어나야 돼 스스로."
엄마의 깨우는 소리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어? 근데 아침이 없다. 다시 소파에 누웠다.
"얼른 학교 갈 준비 해야지. 소파에 누우면 어떻게 해? 일어나면 뭐해 거기 다시 누울 거면? 학교 안 가?"
"아침밥이 없잖아."
"네가 아침 안 먹는다며, 어제 너 안 먹는댔잖아. 그래서 이제 안차려 줄 거야."
허걱! 진짜 아침이 없다. 이런 적은 없는데. 그럴 엄마가 아닌데...
엄마가 밥을 안 준다니 더 배가 고픈 것 같다. 지난번 늦게 일어나서 밥 안 먹고 그냥 학교 갔을 때 배 엄청 고팠는데 오늘도 배고프겠다.
엄마가 아무 말이 없다. 먹어라, 씻어라, 양치해라, 옷 입어라, 물 챙겨라 해야 하는데 엄마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더니 "너 알아서 해. 이제 엄마 안 챙겨줄 거야. 네가 알아서 하고 가."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해준다. 혼자 씻고, 옷 입고, 물 챙기고 다 하고 나니 불안하다. 늦은 건 아닌가?
"엄마 몇 시야?"
"8시 40분이야. 너 이제 5분 남았어. 더 늦으면 넌 지각이야. 엄마 안 데려다줄 거니까 너 혼자가."
아 지각하겠다. "엄마 머리 묶어줘요."
나가는 길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니 엄마가 따라 나와 "길 조심하고 잘 다녀와. 그리고 아침 안 먹었으니까 점심 많이 먹어." "아침 먹을랬는데 엄마가 아침 안차려 줘서 못 먹었잖아." 하니 또 엄마의 입에서 말들이 터져 나온다.
"엄마가 안차려 줘서 안 먹어? 네가 안 먹는다고 해서 안차려 준 거잖아. 아침마다 매일 안 먹고 그냥 가니까 엄마가 안차려 준거 아니야. 그리고 네가 계속 잔다고 해서 엄마가 내일부터 안차려 준다고 했어 안 했어 그래서 네가 알았다고 했어 안 했어? 그래 놓고 엄마한테 밥 안차려 줬다고 엄마 탓하는 거야? 내가 정말 못살아. 차려줘도 안 먹고, 안차려 줬더니 안차려 줬다고 뭐라고 하고 엄마 보고 어쩌라는 거야?"
엄마의 입에서 따발총이 쏘아진다.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라 내려온다. 엄마는 왜 저럴까? 이랬다 저랬다
친절했다가 화냈다가 상냥했다가 호랑이 같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엄마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학교에 가서 점심시간 전까지 배가 고팠다. 어찌나 점심이 맛있던지 점심 전까지 꼬르륵 소리가 나서 혼났다. 내일부터는 아침을 차려달라고 엄마한테 말해야겠다.
돌봄 교실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의 메모가 적혀있다.
"사랑하는 딸들, 오늘도 좋은 날 보냈니? 엄마는 너희를 너무 사랑해. 화를 낼 때도 너희를 사랑한단다. 너희 행동에 화가 나는 거지 너희가 미운건 아니야. 오늘도 잘 지내고 엄마 퇴근 후 만나자."
"뭐래?"
아침에는 그렇게 화낼 거 다 내놓고 또 뭐래? 사랑한대? 알 수 없는 우리 엄마.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노는데 엄마랑 아빠가 싸운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아니 난 내 카드로 돌려놓으면 더 편하니까 그렇게 하자는 거지."
엄마 아빠가 서로 목소리를 높여서 얘기한다. 듣기 싫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건 정말 싫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
"엄마 아빠 싸우는 거 아니야 대화하는 거야."
"싸우잖아 싸우는 거잖아 그만해."
"아니야 엄마 아빠 얘기하는 거야. 서로 생각이 달라서 서로 얘기하는데 조금 목소리가 커진거 야."
"그럼 우리 자면 얘기해."
칫! 분명 싸우는 건데 얘기하는 거란다. 안 되겠다. 말로는 안되니까
종이에 써서 보여줘야겠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 싸우면 이렇게 된다. (타임아웃 20분)(각자 다른 방)'
엄마 아빠에게 이 종이를 내밀었다. 당당히.
싸우던 엄마 아빠가 웃는다.
"알았어. 엄마 아빠 그만할게."
저녁을 먹고 엄마 아빠가 이야기를 하신다. 이번에는 또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지?
싸우는 건가 안 싸우는 건가 내가 직접 들어볼 거다.
"나 갱년기니까 조심해."
"나도 갱년기거든."
갱년기? 그게 뭐지? 엄마 아빠가 갱년기라는데 좋은 건가?
근데 왜 조심하라고 하지?
엄마가 갱년기라니까 아빠도 갱년 기래. 그게 뭐지?
"언니, 엄마 아빠 갱년 기래. 그게 뭐야?"
"몰라, 찾아보자."
언니가 엄마 핸드폰을 몰래 가져와 검색을 한다.
'갱년기 :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인체, 성숙, 노년, 마흔...
"어? 우리 엄마 늙었는데. 마흔여섯 살인데. 아 늙었다는 거구나."
"우리 엄마 아빠가 늙었다는 거구나."
난 또 대단한 건 줄 알았네. "엄마 아빠가 서로 늙었다고 또 자랑한 거야?"
"어이구, 엄마 아빠 늙었으니까 우리가 말 잘 들어야지."
언니는 역시 언니다. 엄마 아빠한테 잘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