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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이 mom e Nov 14. 2022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 박완서가 궁금해졌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언제였을까? 학창 시절 언니가 구입해 놓아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뽑아 읽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책 좋아하는 똑똑한 언니의 모습이 멋있어 보여 언니가 사놓은 책을 흉내 내듯 읽었던 것 같다.

내용이 아니라 글씨만 읽었던 것일까? 분명 읽으며 재미보다는 의무감 같은 것에 끌려 책장을 넘겼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동네 도서관에서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자 서가를 둘러보다가 박완서의 생전 작품들을 모두 시리즈처럼 펼쳐낸 출판사의 책 나열을 발견했다. 다른 책들은 읽어보지 않고 몇 개는 제목이나마 익숙한 것에 감사하며 그중 읽어본 기억은 있으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그 많던 싱아는...'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읽는 그 책의 내용들과 글 기법들이 참 익숙하고 즐거웠다.

술술 읽히는 내용이며, 세세하게 표현된 묘사법이 재미를 더했다.

어린아이 박완서가 그려져서 좋았다.

그러다가 내가 겪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너무 쉽게 우리 옆집 아니 우리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편하게 펼쳐놓았음을 느꼈다.


지극히 일반적인 소녀 박완서가 겪어낸 정말 평범한 이야기 속에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해방이 있었고, 이념의 싸움이 있었다. 그 안에 살고 있던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당연히 했을 고민과 이중성과 살기 위해 그 혼돈의 시기에 이념이 뭔지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살아내야 하기에 했을 고민들이 온전히 느껴졌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단순히 갈랐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 일반국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그리고 그 선택에 있어서 또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그 선택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가혹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던 1950년 6월 25일 그날의 모습은 처참하고 모두가 피난길에 오르고 있었을 것이라, 모두 전쟁의 발발을 알고 두려움에 떨며 발을 옮겼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시절의 사람들은 그 순간의 박완서네 가족들은 그냥 1950년 6월 24일과 별 다르지 않은 하루를 시작했고, 전쟁을 알고는 어찌할지 모르다가  서울 집에 그대로 남게 된다. 나의 상상 속 6.25와 다르다. 그런데 극히 이해가 된다.

 

6.25 피난길이 가족과의 뜻하지 않은 이별이 될 수 있고, 일하러 간 큰 오빠와 아들을 기다리느라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는 그 마음과 과정이 충분히 이해되고, 그에 피난길에 떠나지 못하고 만나게 되는 인민군과의 시간도 사회주의 쪽을 지향하는 듯해야 했던 순간도 또 분단이 되고 나서는 다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듯해야 하는 이념 모르는 우리 일반인들의 살기 위한 혼란이 온전히 와닿았다.


나라면? 내가 그 시절에 살았다면? 일제강점기 살았다면 나는 과연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을까? 

분단의 시기에 살았다면 나는 사회주의를 택했을까? 민주주의를 택했을까?

알지 못하는 이념에 대한 선택조차도 그저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맡기지 않았을까?

그 선택에 있어 비판받을 만한 일반인은 없다 여겨졌다.

그들은 그저 그 당시의 삶에 살아갈 방법만을 내 가족의 안전만을 쫓는 당연한 일을 하며 살지 않았을까?

사회주의 쪽이네 민주주의 쪽이네 비판하고 응징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주말 아프신 친정엄마를 위해 친정을 찾아 밥을 챙겨드리며 일제강점기 이야기에 육이오 이야기를 했다.

육이오 피난 때 다섯 살이었다던 아빠는 보 하나와 닭 한 마리를 쥐고 피난길에 나섰단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게 피난을 갔는데 도착한 곳이 인민군이 있는 곳으로 피난을 가서 엄청 고생하셨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피난길에 나섰던 어리숙한 그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또 들을 수 있었다. 다섯 살 배기가 품에 안고 다녔을 닭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있다가 급하게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깜빡 놓고 온 그 닭이 아쉬워서 인지 정이 들어서인지 아빠는 피난길에 가다가 멈춰서 닭을 놓고 왔다며 울며불며 발길을 멈췄단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온 가족이 끙끙대는데 저만치 오는 사람들 손에 그 닭이 들려있었고, 사정을 들으신 그분들이 다행히 그 닭을 돌려주셨단다. 그도 그럴 것이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고 좋으신 분들이라 다섯 살 어린아이의 떼를 알아보시고 건네주신 거라 여겨진다.


피난길에는 사람들만 피난길에 나선 게 아니라 닭, 소, 개 동물들도 같이 다 끌고 가셨단다. 움직이는 식량이었던 거다.

함께 걸어가다 어린아이 태우기도 했을 것이고, 함께 걸어가다 식량이 떨어지면 그 소를 하늘나라 보내며 배를 채웠을 것이다. 박완서 덕분에 친정집에서 일제강점기 살던 우리 할머니가 열세 살에 왜 시집을 가야 했는지 피난길에 방향을 잘못 잡아 인민군 있는 곳으로 가서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열세 살에 시집온 친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를 보니 눈시울이 붉다. 아빠 나이 팔십이 다되어 가는데 그 나이에도 엄마가 떠오르면 눈물이 맺히나 보다. 나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엄청 잘해서 친구들이 졸졸 따라다녔고,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야기와 외할아버지의 무능력과 무책임함으로 인해 없는 살림 덕에 공부를 더 못해 울며 보낸 이야기에 막냇동생 보라며 학교 보내지 않은 외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하셨고 그래서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며 "내가 그래서 남의 집 가서 일을 했어."하고 몇 번을 되풀이하며 그 시절의 억울함이 복받치듯 눈물을 보이셨다.

지금만큼 살게 된 것도 그 시절 그들의 혼란이 있었고, 살아내려는 간절함이 있었으니 가능한 것이리라.


그 시절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세계 지금의 세계 또한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야기도 나누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이리 오래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너무 길게 가는 것에 대한 걱정과 함께 앞으로는 3차 대전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했다.


현 정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우리나라 또한 정치분열이 심각함을 이야기 나누며 전 정부와 현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 나라가 어찌 될꼬 걱정까지 갔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랑 오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되었다. 다음에 또 박완서의 책을 읽고 부모님과 이야기 나눌 것이 기대된다. 


난 원래 금사빠이긴 하지만 금세 이 책을 통해 박완서의 팬이 되고 말았다.

도서관이 열지 않는 일요일 박완서의 다음 책을 읽어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벌써 눈이 손이 마음이 근질거린다.

그리고 그 도서관에 꽂혀있던 죽 나열된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박완서의 글을 접할 생각에 벌써 즐겁다.


박완서 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 덕분에 그 시절을 살아낸 부모님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린다. 다음은... 나목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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