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절정에 달 했을 때 만나는 나무의 모습은 그 계절을 올곧게 표현하고 있어 반갑고 따스하다.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목이 주는 계절의 느낌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원스레 옷을 다 떨군 나무가 홀연 한 해의 자기 임무를 모두 마친 듯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색색 옷을 뽐내며, 자연의 신비를 뽐내며 빛을 발하던 노랗고, 빨갛고, 갈색의, 초록의 옷들을 모두 벗어던진 그 초라함에 슬프기도 하다.
작가 박완서의 '나목'은 전쟁이 훑고 간 그 스산하고 외롭고 상처받은 듯한 텅 빈 몸을 움츠리는 나목을 떠오르게 한다.
이 역시 1950년대 우리나라가 겪은 전쟁의 시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 이후의 시간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쟁이 다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매일의 불안에 앞 전 전쟁의 후유증이 더해져서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 어찌 살든 무슨 상관인가 던지듯 살기도 하고, 그래도 모를 앞을 위하여 반듯하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나 싶은 양 쪽의 마음을 뜨거운 고구마 손에 얹어놓은 듯 이 손 저 손 튕기며 살아내고 있었다.
주인공 '미스 리' 그녀는 전쟁이 앗아간 오빠들의 육신과 엄마의 정신에 혼자가 아니나 혼자인 듯 아니 그보다 더 외로운 삶을 살아낸다. '옥희도'를 통해 위로를 받고 사람의 온기를 얻으려 했던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옥희도에게서 아버지와 오빠들을 느끼고 있었고, 오빠들의 허망한 죽음에 정신을 놓은 엄마를 옥희도의 부인에게서 찾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감히 애가 다섯이나 딸린 옥희도를 사랑함을 자신 있게 말하고, 그 부인에게도 거리낌 없이 품에 안겨 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 속에 가족을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인 미스 리에게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고 불안한 전쟁 속 생활에 안정을 쫓으며 찾은 상대가 '옥희도' 였으리라.
'황태수', '다이애나', '미숙이', '미스터 조', '환쟁이들' 글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주는 시대의 대표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이야기로 그 시대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박완서 님의 첫 작품이었던 이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먼저 읽은 나에게는 조금은 싱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또 반대로 나목 먼저 읽었으면 이만큼 박완서 님이 궁금해지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나목'을 읽었으니 나의 부모님과 이번에는 어떤 궁금증을 털어내 볼까 생각해본다.
전쟁 시절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나와있는데 그 당시 어린이였던 아빠는 어떤 삶을 살고 계셨을까?
주변에 전쟁으로 잃었던 사람은 없었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얼 하며 자식들을 이 시기에 먹여 살리셨을까? 이번 주말 부모님을 찾아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좀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