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준을 내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
나를 알아보기 위한 시간으로 내게 연애금지를 내렸다. 딱 1년 간만 외롭고 불안은 견뎌보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매일 명상을 30분씩 쉬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생각들이 어떻게 올라오는지를 관찰하였다.
아무것도 듣지 않는 '호흡명상 '은 오직 들숨과 날숨에 쉴틈이 없이 집중해야 하는데 , '숨' 하나에 이렇게도 집중하는 것이 어렵구나 라는 생각과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 , 불쌍할 정도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숨'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그 외에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과 나의 귀여운 고양이가 나를 쓰다듬고 지나가거나 , 브런치에 올릴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그것은 일단 치워두고 '숨'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 당시 나의 생각은 금방이라도 누군가와 만나 애정을 주고받고 , 사랑을 나누면 이 외로움은 잠시 사그라 들것이라고 말하지만 , 그 잠시간의 쾌락을 위해 이 외로움과 불안을 또 회피한다면 아마도 이 감정을 돌보지 않은 채 , 타인에게 또 사랑을 받으려 한다면 아마 나는 또 아무나 만나 나를 짓눌려 버렸을 것이다.
또 나의 인정욕구와 나를 떠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나에게 의지하게 만들어 나를 필요로 하게끔 만들고자 했다. 나는 타인을 깎아 내리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 내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을 선택해 나의 자존심을 채우고 , 그것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길 바랐다. '쓸모 있는 인간'이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나는 착하다라고 할 때 나는 기뻤고 ,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사람들이 내게 붙어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런 모든 마음을 접고 , 누군가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 혼자서 감정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명상과 알아차림이 꼭 필요했다. 처음엔 감정이라는 것이 '책임'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 그저 올라오는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줄 몰라 , 분노하거나 , 울거나 ,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 열심히 일하기 , 한강 달리며 다른 생각으로 덮기!라는 회피라는 수단을 동원해 감정을 억눌렀지만 , 더 이상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나는 약해져 있었다.
이제는 감정과 정면도전이었다. 나는 명상으로 숨에 온정신을 집중했듯 , 일상생활에서는 생각을 계속해서 알아차렸다. "너는 외롭지? " "불안하지 " "사람들은 널 싫어할 거야 ""이제 35살이나 되었는데 , 결혼 안 하면 온 세상이 널 우습게 볼걸?"이라고 떠들어대는 생각을 생각으로 분리하는 시도를 했다.
뇌의 작용자체가 , 원시시대부터 생존에 대비하기 위하여 예측하고 ,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정보를 가지고 지금을 해석해 낸다고 하니 , 아마도 나의 과거 어디선가부터는 사람들과의 연대감 그리고 무리 짓거나 , 그들에게 종속되고 싶은 , 자산을 더 획득하지 않으면 밀려 날것이라는 본능적인 어떤 위기감 같은 것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연애금지라는 것은 , 나에게 단순히 어떤 이성을 만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 나에게 저장된 기억과 본능 욕구, 생존욕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여자라서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 성적 욕구, 사회에 시선과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 보이지 않는 통념들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이었지만 , 무의식적인 생각과 감정 본능에 이끌려 더 이상은 무의식에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는 ' 불안' 하고 또 외로웠다. 한 번도 혼자인적이 없어서 , 혼자 하는 모든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진짜 이렇게 혼자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 그냥 누군가와 만나 결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으나 , 끌려가지 않았다. 생각을 알아차리고 , 혼자서 밥을 먹고 올라오는 감정이 울컥울컥 느껴지고 , 눈물이 줄줄줄 나는대도 그대로 있었다. '외로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 느낌자체로 보면 정말 소름 끼치고 , 때로는 비참하게 느껴지거나 , 아무도 없는 검은 호수에 마음이 뻥 뚫린 느낌을 주곤 했다.
처음 6개월간은 ,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그저 호흡하고 알아차렸다.
연락이 와도 , 모두 다음으로 미루고 마치 감시카메라가 나를 감시하고 있듯 , 나에 생각과 감정 느낌을 써내려 가며 관찰했다. '나'는 이렇게 ,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이 많았다..
타인이 좋아하는 음식, 생일, 선호, 표정변화는 기가 막히게 알고 준비하면서도 , ' 나' 에 대한 관찰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 나는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 책을 좋아하고 ,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나'의 성격은 예민하고 , 소심한데 어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 '생각'이 떠오르면 나와 '생각' 동일시하여 '생각'에 대한 근거를 찾아보거나 다른 의견을 찾지 않고 내 '생각 ' 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불통 같은 면도 있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 관념'이라 부르고 , 그 관념이 계속 한 사람에 인생에서 지속된다면 그것은 ' 고정관념 ' 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 고정관념 ' 은 무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라 , 내가 의식적으로 바꿔서 보거나 , 다른 해석을 하는 습관이 없다면 아마 한 가지 정답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가령 ' 남자는 돈이 많아야만 결혼할 수 있어 ' , 라던지 ' 여자는 날씬해야만 예쁨 받을 수 있어 ' 혹은 ' 돈이 많아야만 행복해 '라는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 이것은 그 사람에게는 이미 정답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한 가지 틀이 타인에게도 작용하지만 , 자기 자신에게도 작용하기에 , 생각을 객관적인 의견으로 보지 않는다면 , 타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혐오하게 되는 '틀'을 만들어 버리는 셈이다. 예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햇빛이 자신을 공격한다 고 믿어 자신의 얼굴에 구두약을 바르는 사람을 보았다. 극적인 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 우리는 모두 우리 무의식의 생각을 믿고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 나의 믿음이었던 ' 30 대 중반에 결혼하지 않으면 불행할 거야. 나는 혼자라면 외로워 죽을 거야 라는 관념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 무의식을 의식하는 사람.
세상의 기준이 아닌 , 나의 기준을 만들어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