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

내가 맺은 열매에 대한 예의

by 기글지니

역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내가 즐겨 달리는 길에도 몇 계절을 달려온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벼, 콩, 감, 밤, 들깨, 그리고 이름 모를 열매들... 다양한 식물들이 가지각색의 열매를 맺는다.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배가 불러지는 광경이다.

추석, 추수감사절, 중추절, 오봉절 등과 같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기리고 수확에 감사하는 명절들이 왜 생겨났는지 저절로 알 것만 같다.

가을01.jpg 벼 이삭
러닝03.jpg 감나무 열매
가을02.jpg
가을04.jpg 탈곡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들깨 나무
러닝02.jpg 몰랐는데 알게 된, 좀작살나무 열매
러닝01.jpg 몰랐는데 알게 된, 피라칸타 열매




인간을 나무에 빗대면,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을까.

큼직하고 실한 열매는 열리지 않는 나무겠구나 생각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으니 말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열매 정도는 맺었으려나 생각하다가 그늘지고 서늘한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내가 고작 그런 존재 밖에 안되냐고. 서운하다고.


잘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고 듣고 하다 보니 내가 키워낸 열매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존재만으로 소중한 것들을 맺어놓고는 터부시 했구나. 그네들은 나에겐 그 어떤 열매보다 더 흐뭇한 열매들인데.

미안하다. 내 열매들아.

누구에겐 별거 아니고 보잘것없는 열매일지라도, 그 열매가 맺히고 커온 과정은 결코 보잘것없지 않다. 어느 것 하나 그냥 키워낸 열매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밥 지을 쌀을 씻으면서, 혹시나 흘려보내는 쌀알이 없는지 조심스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