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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igam Oct 20. 2021

마지막에 남는 것들

성인이 남기는 유물에 관하여

단정한 차림의 사람들이 가방에 물병을 하나씩 꽂고 버스에 올라타는 아침 7시. 어두컴컴한 겨울 아침에 익숙한 사람들은 해가 뜨기도 전에 부지런히 움직인다. 버스는 운행 스케줄에 따라 약속한 시간에 도착한다. 문이 닫히고 신호를 기다리는 버스 밖으로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각진 사각 안경을 쓴 버스 운전기사는 한번 닫은 문을 다시 열어주지 않는다. 각박해 보여도, 다음 정류장에서 제시간에 도착할 버스를 기다릴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원칙이다.
 

도심을 낮은 속도로 주행하는 저상버스는 휠체어의 보폭에 따라 낮게 설계되어 커브를 돌 때도 심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도시 근교를 연결하는 통근 열차인 레기오날반은 2층으로 되어있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른다. 기차의 2층 계단 맨 앞자리는 내 기준으로 상석이었다. 옆 기차 칸과 연결되는 통로가 뻥 뚫려 있어서 허공을 응시하며 빵과 커피를 우물우물 먹기 좋기 때문. 밖이 어두우면 창문에는 풍경 대신 기차 내부의 모습이 반사된다. 창문 너머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즈음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독일의 대중 교통망은 잘 구성되어 있어서 원하는 곳은 웬만하면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서 도달할 수 있었다. 학생증으로 차비도 무료였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기차역을 서성이며 방문할 새로운 곳을 탐색하곤 했다. 그중 쾰른 근교의 아센 도르프 평원에 위치한 브루더 클라우스 예배당은 방문하기 번거로운 장소였다. 거리상으론 가까운데 직통으로 연결되는 노선이 없어서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했고, 기차역에서 내린 후 목적지까지 버스가 운행되지 않았기에 택시를 타야 했고, 찻길로 목적 장소까지 도달할 수 없었기에 근처에서 내린 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예배당의 문이 굳게 닫혀있었을 때, 처음엔 대충 평일 낮 시간이면 열려있겠거니 생각했던 내 안일함을 탓했다. 그런데  마음먹고 그 복잡한 여정을 거쳐 도착한 예배당의 문이 굳게 닫힌 것을 두 번째로 경험했을 땐 마음이 아주 많이 상했다. 분명 평일 낮 시간에 열려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왔는데 왜 문이 닫혀있지. 동네 어딘가에 있을 관리인을 찾아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뜻밖의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택시를 운전하시던 아주머니였다.


독일에 이민 온 우리 고모와 똑같은 짧은 커트머리에 통통하다기보단 듬직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단단한 체구, 투박한 신발과 외투를 편안하게 걸친 아주머니는 멀리서 예배당을 찾아온 이방인의 헛걸음이 안타까웠는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며 들어갈 방법을 알아봐 주셨다. 비록 결과적으로 예배당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헛걸음의 허망함을 공감해준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비참한 기분을 덜 수 있었다. 독일에서 난 참 많은 거절을 경험했었다. 문이 닫힌 것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이다. 그 규칙이 어떤 것이건 간에 그건 주인 맘이다. 독일의 수많은 기준과 규칙을 따라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독일 유학 말미에 와서야 방문하게 된 예배당, 들어가지도 못한 상황 속 따뜻한 친절을 마주하고서 뜻밖에 마음 문이 열렸다.



세 번째로 예배당을 찾았을 때 비로소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들판을 한참을 걷는 동안 환한 베이지색의 외관으로 빛나던 예배당, 다가가서 세모로 된 문을 여는 순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어두컴컴한 동굴이 나타난다. 새카맣게 타버린 검은 내부 벽은 실제로 길쭉한 원통형 목재를 세운 후,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나무 거푸집을 3주 동안 태워 없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천장 꼭대기엔 눈물 모양의 구멍이 뚫려있는데, 얼마 전 내린 비 때문인지 바닥엔 천장에서 내려온 비가 고여있었다. 무엇보다 뚫린 구멍을 통해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것은 비가 아닌 빛이다. 바닥의 물 웅덩이와 검게 그을린 벽의 작은 구멍들은 하늘빛에 응답이라도 하듯 반짝인다.



높이 12미터, 폭 5미터 크기의 좁은 예배당은 짓는데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빛의 건축가로도 불리는 페터 춤토르는 2009년 완공된 이 예배당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마을의 수호성인인 브루더 클라우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 예배당의 건축엔 동네 농부들의 직접 참여했다.


클라우스는 15세기 스위스 출신의 성인으로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기 위해 권력을 내려놓고 속세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떠나기 얼마 전 클라우스는 뇌물을 받은 동료 법관과 강제적으로 십일조를 거둬들인 신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우울증에 빠졌었는데, 결국 자신을 괴롭힌 것이 외부 요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저항심 때문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부조리한 세상을 탓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간 어린양 예수를 묵상하는 것에 온 생애를 바친 클라우스. 새카맣게 자기 속을 태우고서 온전히 하늘빛을 담아내는 예배당은 마치 클라우스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던 마음을 현현한 듯 숭고하다.


유럽의 수많은 성당과 그곳에서 기려지는 성인들의 유물은 신성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진다. 하지만 물질의 속성이 변하고 나서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에 남겨지는 것이 하늘을 향해 여는 마음이라야 진짜 성인이 남기는 유물인 것을.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무게를 잠시나마 가볍게 하기 위해선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에겐 소망이 있다"던 친구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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