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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igam Oct 22. 2021

성상파괴적 자화상

혹은 우상숭배적 자화상

나무마다 반짝이는 어여쁜 전구로 장식되고, 도심 중앙에는 각양각색의 기념품을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는 독일의 12월. 따끈하게 데워진 달큼한 글뤼바인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판대 앞은 인파로 북적인다. 딱딱한 돌바닥이 내뿜는 냉기에 발바닥이 얼어갈 때쯤, 발을 동동 구르며 바삭하게 튀긴 감자전에 상큼한 애플 무스를 얹어먹는 맛이란. 게다가 동그란 빵에 길고 통통한 소시지를 끼워 알싸한 겨자를 뿌려먹는 독일식 핫도그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빠져서는 안 될 단골 메뉴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뮌헨 다음으로 큰 도시 뉘른베르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크리스마켓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마켓에서는 평범한 독일식 핫도그가 아닌 작은 소시지 세 개가 들어간 핫도그를 맛볼 수 있는데, 이 동네에서 진짜 맛있는 소시지를 먹기 위해서는 시청 광장 근처에 위치한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가야 한다. 주의할 점은 혼자 가야 한다는 것. 음식 맛에 정신이 팔려 같이 간 사람과 사이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겠다.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

뷔르츠부르크에서 뉘른베르크는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12월 한 달 동안 네 번 기차에 몸을 실었다 . 세계 최대 규모라는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기 위해, 또 맛난 소시지 맛을 보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천재 화가 뒤러가 태어나고 활동한 흔적을 보기 위해서였다. 뒤러의 생가를 비롯하여, 도시는 그를 기리는 광장과 각종 조형물들로 가득 채워져있다. 독일 르네상스 예술을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뒤러는 금세공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밀하고 섬세한 표현이 탁월한 그의 특성은 판화에서도 빛을 발했고, 당시 회화보다 지위가 낮은 판화를 독립적인 예술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뉘른베르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선구적인 인쇄술을 갖고 있었는데, 이 덕분에 뒤러의 예술은 북유럽을 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잘 알다시피, 인쇄술은 종교개혁의 주역이기도 하다. 인쇄술 없이는 마르틴 루터의 사상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갈 수 없었을 테니. 마르틴 루터와 동시대에 살았던 뒤러는 종교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이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진 않았으나, 루터의 감금 소식에 마음 아파했으며, 요한계시록 연작을 목판화로 제작하여 그림을 통한 복음 전파에 일조했다. 하지만 말년에 뒤러는 판화 <성 필립>(1523)을 완성한 후 한참 동안 공개하지 않았는데, 성인들의 이미지를 그리는 종교 미술의 역할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뒤러가 제작한 요한계시록 연작의 표지

당시 종교 개혁은 성상파괴운동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부르짖은 종교개혁은 십계명 제2계명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에 근거하여 교회를 치장하고 있는 우상화된 성인들의 형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터. 칼뱅을 중심으로 한 북부 유럽의 종교개혁이 극단적인 성상파괴운동으로 치닫은 것과는 별개로 루터는 종교 미술에 대해 온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루터는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즉 지나치게 숭배하거나 공경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종교 개혁 당시 화가들, 특히 종교 개혁을 지지했던 화가들의 행적에는 자신의 업과 새로운 신념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다. 뒤러 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크라나흐도 구교와 신교 진영의 그림을 모두 그렸다. 그런데,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얼마 전, 1500년에 그려진 뒤러의 획기적인 자화상은  뒤러가 이미 이런 갈등을 일찌감치 뛰어넘었음을 보여준다.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에서 뒤러는 베라 이콘에서 사용되는 엄격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정면관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 본인을 예수님과 동일한 형태로 표현했다. 이 그림은 스스로를 성상의 위치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성상파괴적이다. 훗날 성인의 종교적 표현에 의문을 갖게 된 뒤러의 이 자화상이 뒤러의 사후에 종교적인 성격을 띤 성물로 여겨졌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뒤러,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작

뉘른베르크에서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게 된 유래는 종교 개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신성로마제국의 전통이었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성자 니콜라스가 순교한 날인 12월 6일을 기념하여 부모가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즈음 선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리게 된 것이라 전해진다. 하지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자를 숭배하는 이러한 풍습을 따를 수 없었기에 로마 제국에서 지정한 예수 탄생일인 12월 25일 전날 선물을 주기 시작했고, 개신교를 받아들인 도시들도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게 된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인구도 많고 부유한 도시 중의 하나였던 뉘른베르크에서는 이에 따라 16세기 중반부터 커다란 규모의  “Christkindlesmarkt”(아기예수 마켓)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구교와 신교가 화해를 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 성 니콜라스가 선물을 주는 것으로 합의되었다고 하니, 이 또한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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