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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27. 2020

청소를 하며 다듬어가는 일상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책상을 보니 어지럽게 놓인 메모지와 펜,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주 사용하는 메모지와 책갈피는 꺼내져 있어야 편한데 편리함보다 깔끔함을 위해 모조리 서랍에 넣어두고 책도 정리를 했다. 깔끔해진 책상에 흐뭇하게 웃고 난 뒤 마지막으로 '방역'을 위해 에탄올을 뿌려 책상과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를 닦았다. 그렇게 깨끗해진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타닥거리고 있자니 내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난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것들을 좋아했다. 피아노를 잘 치지 못했고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손이 쉬는 일 없이 늘 분주하게 꼼지락거렸다. 매일 뭔가를 만들고 꾸미느라 책상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좋아서 했던 일들이 있는 반면, 해야만 해서 했던 일들도 있는데 나에게 청소가 딱 그런 일이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 청소를 해야 했는데 그냥 쓸고 닦고 끝내면 될 것을 하기는 싫고 지저분한 건 더 싫어서 울고불고하며 기어이 서랍까지 뒤집어 정리를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청소를 조금 더 즐기며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 만약 그랬다면 조금 더 착한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깔끔한 어른이 되었으려나?




지금도 나는 책을 읽다가 집안 정리를 하고, 컴퓨터를 하다가도 싱크대로 가서 남아있는 그릇들을 닦는다. 특별히 깔끔해서라기 보다는 지금 청소를 해두는 게 미뤄두었다가 숙제처럼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바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림 같은 집을 꿈꾸거나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건 아니다. 그저 집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쌓여있는 쓰레기며 치워야 할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지금 당장 조금 더 부지런해지는 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다. 너무 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움직이며 집안을 정리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며 내 나름의 방법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책을 읽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지금은 조금 더 누려볼 생각이다. 여전히 자주 게을러져서 다시 마음을 다독여야 하지만 금방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어르고 달래서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시작하며 습관이 될 때까지 느리더라도 한걸음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달라진 마음가짐과 일상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오늘도 그런 나를 꿈꾸며 책상 정리를 한다.

▲ 베란다 창문쪽으로 옮겨 놓은 책상
▲ 뚜껑이 있는 책장 덕분에 책에 쌓이는 먼지로부터 해방되었다
▲ 요즘 마시기 딱 좋은 유자차 한 잔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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