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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Nov 28. 2017

미국 생활 5년을 하나의 글로 설명하기

My journey since 2012 

2017년, 한국에서 미국행 편도 비행기를 끊은지 5년이 되었다. 2012년에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내 미국 생활은 시작 되었다. 사실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내 삶에 어떻게 실질적인 변화가 올지. 예상은 하려 했지만, 예상대로 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한번 압축해보려고 한다. 지난 5년간 내가 어떻게 깨지고, 부서지고, 배우고, 성장하고, 성취했는지에 대해서. 



2009년 나는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서는 HCI를 열심히 공부했다며 면접에서 말을 잘 한 탓에, 운 좋게 UI designer로 엘지에서 직장을 얻게 된다. 대학시절 동안 디자이너가 되려는 희망만 가지고 있었을뿐, 실제로 디자이너가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었다. 그리고 2012년에 유학을 떠나고 2013년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인턴을 하고 2014년에 풀타임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Chapter 1. 유학.

2009년, 나는 왜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가? 이때 엘지에서 안드로이드를 초반에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다른 제조사들 역시 안드로이드폰을 만들겠다며 시장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던 때였고, HTC가 가장 잘 나가는 제조사였을테다. 그런데 모든 제조사들이 자기 나름대로 안드로이드를 해석해서 UI에 제조사의 아이덴티티를 담아내고 있었고, 엘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의 안드로이드는 정말이지 가관이였다. 당시에 구글은 엔지니어링 중심의 회사였고, 디자인은 두번째였다. 그래서 제조사에서는 이따위 안드로이드 못쓰겠으니, 나름대로의 UI를 새롭게 디자인 하려는 시도가 당연한거였다.  3주로 짦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결국에는 1년 반짜리 프로젝트가 되었고, 그 1년 반동안 사실 초창기의 UX 방법론 같은걸 시도하고 있었다. 필드에 나가서 리서치도 하고 Data synthesize도 하고, 디자인 iteration도 하고 등등. 이게 나는 많이 힘들었었다. 선형대수나 생산관리, 재고관리나 배운 나에게 이건 미지의 영역임과 동시에 신세계였다. 즉 다른말로 하면, 산업공학을 전공한 나는 디자인 지식의 한계를 느낀거다. 그래서 더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1년 설날, 고향에서 샤워를 마치고 잠을 청하러 침대에 누웠다. 설날이면 이번 년도에는 무엇을 할까, 어떻게 진행될까 상상해보곤 했는데, 엘지에 계속 있을 생각을 하니 뭐 딱히 그리 흥미롭지가 않았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한계를 느낀거 때문일수도 있겠는데,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서 영어 학원을 끊고 유학 준비를 시작 했다. 이때 이성적으로 따져서 '내가 회사를 그만 두고 유학을 갈 경우', '엘지에 남아서 계속 진급을 할 경우' 로 나눠서 SWOT분석 따위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한다. 이성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감각은 거짓말을 못 한다고. 그래서 감각이 확실하게 왔을때는 이도 저도 따지지 않고 밀어부치는 때도 필요하다. 


2월 부터 유학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데, 7월 경에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CMU랑 산학협력을 하는 프로젝트 였다. 그야말로 UX방법론을 배우고자 엘지에서 큰 돈을 들여서 카네기 멜론에게 배우겠다는 심산이였다. 그리고 저 사진에 보이는 웨인 교수님을 알게 되고, 결국 지원 과정에 있어서 웨인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얻게 된다. 



Chapter 2. 석사 & Job apply

CMU interaction design program에서의 2년

12월에 지원을 하고 3월 경에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8월부터 시작한 석사 생활은 사실 순탄치만은 안았다. 첫 학기에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생각 했지만, 돌아서 생각해보면 첫 학기는 적응을 한거 이외에는 별다른 한게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내가 영어를 잘 하는줄 알았고,(한국 사람들에 비해서) 이 잘한다는 우쭐함 때문에 오히려 못알아 들어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숙제를 잘못 알아들어도 '나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야' 라는 자존심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몰라. 나 외국인이야. 영어 잘 못해. 당연하잖아' 라고 인정하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태도는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한번은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못 알아 들어서 갸우뚱 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원어민 친구에게 ‘그래, 과제가 도데체 뭘 하라는 거야?’ 라고 물어봤었다. 그런데 그 친구도 ‘나도 모르겠어’ 라고 대답 하는 것이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 영어가 문제가 아니니 그리 쫄지 않아도 되겠다’ 라고 생각 하게 되었다. 그때 느낀 ‘쫄지마, 떠들어도 되’ 정신은 미국 생활에서 필수이다. 그 다음부터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싶으면 말한다. '야, 나 외쿡인이야. 영어 못 알아들어도 참아봐. 내가 다시 설명해볼게' 


지원 후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회사들. 실제 지원한 회사는 셀 수 없다. 


학교에서 1년을 그렇게 배우고 깨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와중에 취업 역시 내가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였다. 일단은 중간 여름방학때 하는 인턴부터 잡아야 했다. 그래서 사실 취업 시즌이 아닌데도 기회만 되면 무조건 지원을 했다. 레쥬메를 낼 수 있는 기회는 크게 회사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잡 페어, 알아서 웹으로 지원, 지인에게 내부 추천 부탁 이정도가 있었는데, 시간만 나면 레쥬메를 들이밀었다. 엔지니어를 리쿠르팅 하러 오는 잡 페어에서도 당당하게 레쥬메를 들이밀었다. 미국에서 회사 지원이 한국에서보다 상대적으로 쉬웠던 이유는, 레쥬메, 커버레터, 포트폴리오만 잘 준비해놓으면 여러개의 회사에 그렇게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지원을 할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 회사들이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 중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회사들이다. 그리고, 아래는 내가 면접을 볼 수 있었던 회사들이다. 


지원 후 면접을 볼 수 있었던 회사들


마소의 경우에는 11월에 웹을 통해 지원 했고, 학교에서 하는 잡 페어 같은 곳에 오면 무조건 레쥬메를 들이 밀었다. 나 경력 있다고, 프로젝트들 나름 열심히 해 왔다고. 웹을 통해 지원한게 먹힌건지, 잡 페어에서 들이민 레쥬메가 먹혔는지는 모르겠지만 2월에 전화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3월에 현장 인터뷰를 보았다. 이게 대부분의 회사의 티피컬한 프로세스다. 전화 인터뷰로 면접자를 어느정도 걸러내고 온사이트에서 하루 종일 인터뷰를 보게 된다. 그리고 면접이 끝난 이틀 후, 이런 한줄의 이메일을 리쿠르터로부터 받게 된다. 



내일쯤 전화를 하고 싶다는 건데, 거기엔 “I would love to talk with you more about your interview results” 라는 문장이 있었다. 이게 뭘 말하는건지 몰라서 몇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love to talk about”이랑 “like to talk about”이 다른 의미를 지니는 걸까, 혼자서 엄청 생각 했었다. 아무튼 다행히도 합격 했으니 축하한다는 전화 였다. 그렇게 인턴 생활을 거치고, 풀타임으로 하이어 되어 2014년 부터 정식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을 하게 된다. 


아래 링크는 이때 인턴으로 했었던 프로젝트. http://gilberthan.com/portfolio/windows-8-start-screen-background-creator



Chapter 3. 나는 왜

자, 여기서 다시 질문해본다. 지난 5년간 의사결정의 순간들은 많았었고, 왜 그런 의사결정들을 내렸었는가. 사르트르가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Birth와 Death사이의 Choice말이다. 엘지에서는 내가 디자인적인 정식 교육과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을 했었다. 그때 그때마다 디테일의 기준은 달랐었지만, 지금 되돌아서 생각 해보면 이유는 딱 하나 였던것 같다. 



“Becoming a great designer” 라는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우리네 인생은 발전을 원하지 않는가. 계속 배우고, 계속 발전하고, 계속 성장하고 그런 마음은 언제나 일관된 마음인것 같다. 다음 단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다음에는 내 앞에 뭐가 나올지 궁금하고 에너지 가득한 말 아닌가. Great designer에 대한 정의도 사실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큰 임팩트를 끼치는 매니져 레벨로 올라가는것을 Great designer가 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디자인 스킬적인 부분에서 어떤 ‘장인’의 수준에 오르는 것을 Great designer가 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Great designer가 된다는 말은 너무나도 추상적일 수 있을테니, 좀 더 현실적인 기준을 가져와 보자. 


항상 점검해 봐야 한다. 이 두가지 사항을. 자기 자신은 지금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인정받고 쓰여지고 있는가. 첫번째 Growing up은 지금 내가 하고 있을 일의 재미적 요소를 이야기 한다. 가끔 'it was fun' 이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나는 이 말이 당최 무슨 말인지 정체를 알고 싶어 했다. 잠정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재미 있다는 말은 무언가 성장했거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 했다' 라고 정의 내렸다. 업무가 힘들어도, 산더미 만큼 쌓여 있다고 하더라도 이 업무를 하면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하면서 업무를 진행한다면 밤을 새워도 괜찮다. 학교 다닐때 밤을 새워 과제를 해도, 그때마다 과제를 제출하면서 어떤 스킬을 하나 획득한 자신에 얼마나 뿌듯해 했었는가. 회사에 대한 관점을 돌려서, ‘내가 돈을 받고 배우고 성장하는 곳’ 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업무를 진행하면서 성장하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내가 얼마나 유용하게 회사에서 쓰여지고 있는가는 내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지식과 스킬이 회사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여지고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 보아야 한다. 배웠으면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쓰여지지 못한 지식이라면 당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두가지 항목은 OR가 아니라 AND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질문에 한가지라도 NO라는 답이 나온다면 다음 스텝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 한다. 인정 받아서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이 업무를 다 마쳐도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다면 그건 그야말로 ‘노동’ 이다. 성장 가능성이 보여지고 잘 배우고 있는데 그 배우는 것이 인정받지 못하고 실제로 쓰여지지 않는다면 그 배움은 ‘헛된 배움’ 이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두 다리를 움직여 한발짝 한발짝 걸어가야 하는데, 한 다리는 ‘지식’이고 한 다리는 ‘실천’ 이라고. 배우기만 해서도 앞으로 나갈 수 없고, 지식 없이 실천만 한다고 해서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실천 없는 배움은 헛된 배움이며, 배움 없는 실천은 삽질이다.


돌아보면, 이 두가지를 항상 점검하고 나 자신과 내 위치를 반성하고 검토하고,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인가, 다음 스텝을 생각해 볼 것인가를 항상 생각했던 것 같고, 그리고 아직도 나는 사실 항해를 운행중에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나와야 겠다는 생각도 사실 이 두가지 항목에 YES라고 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관련 글 링크: 직장을 옮깁니다. https://brunch.co.kr/@gilberthan/18)


커리어든 인생이 되었든 여러분들은 하나의 배를 타고 있다. 내가 키를 잡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바람에 의해, 파도에 의해, 날씨에 의해 방해 받고, 영향 받으면서 배를 항해 하고 있다. 가끔은 그 영향이 좋은 영향일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일수도 있다. 사실 나 같은 경우에서 CMU를 입학하기 위해 웨인 교수님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좋은 바람을 만난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불안하기 때문에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서 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 미약하나마 지금 가지고 있는 한정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미래를 점쳐보려 하지만, 그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서 계획 대신에 원칙이라는게 필요한 이유이다. 물론 이 원칙도 절대 불변의 원칙이 아닐테고, 시기에 따라서 변할테다. 그래도, 지금의 원칙을 고수한채 목적지를 보면서 앞으로 나가는게 내 삶에 있어서는 옳은게 아닐까 생각 해본다. 


누구나 본인의 배 안에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고, 콜롬버스가 GPS없이 항해한것 처럼 목적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가. 아직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아름다운곳이라고 짐작, 믿음 혹은 희망 정도 할 수 있을뿐. 하지만, 풍파와 바람에 영향 받으며 항해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목표 지점에 정박했을때 모두가 생각하고 꿈꾸었던 만큼 아름다운곳에 정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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