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전쟁, 39조 달러의 청구서 (3)

그 숫자가 당신의 식탁에 도착하는 방식

by Gildong

제3장. 1973년의 유령이 주유기 옆에 서 있다


1973년 겨울, 뉴저지의 한 주유소 앞에는 동트기 전부터 늘어선 차들이 내뿜는 허연 배기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사내의 손은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기름 칸 때문인지 미세하게 떨립니다. 주유소 입구에 걸린 ‘기름 없음(No Gas)’이라는 팻말은 그날 아침,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마주한 가장 정직하고도 잔인한 선전포고였습니다.


사막의 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평하게 차갑습니다. 시나이반도의 모래바람 속에 멈춰 섰던 수에즈 운하의 정적은 이제 호르무즈 해협의 검은 파도 위에서 기이한 데자뷔로 되살아납니다. 5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소환된 이 유령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총성이 멈춘다고 해서, 전쟁이 정말 끝났다고 믿느냐고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전장에서 승리했습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기습을 물리쳤으며 카이로로 향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환희는 짧았습니다. 아랍 국가들이 밸브를 잠그기 시작하자, 미사일의 궤적보다 무서운 유가 그래프가 수직으로 솟구쳤습니다. 전선에서 이기고도 시장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그 기묘한 패배의 기억. 3달러였던 유가가 12달러로 치솟으며 도시의 가로등을 끄고 공장의 전원을 내렸던 그날의 공포는, 이제 280달러를 향해 폭주하는 오늘날의 현실로 육화합니다.


사막에서 원유는 더 이상 자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사일보다 정교하게 조준된 단두대의 칼날입니다.


이란은 이 오래된 유령의 사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 승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호르무즈라는 세계의 경동맥에 손을 얹고 지그시 힘을 줄 뿐입니다. 배 한 척이 멈춰 서고 해상 보험료가 튀어 오를 때마다, 제국의 숨통은 서서히 조여옵니다.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기름값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정산의 시간은 미사일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가옵니다. 이들은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공포를 현재의 무기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포연은 걷혀도 냉기는 남습니다. 전투가 멈춘 자리에 진짜 오일쇼크가 찾아왔던 1973년 12월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전쟁터의 지도를 아무리 재편해도, 결국 승패는 전 세계 주유소의 펌프 앞에서 결정됩니다.


트럼프가 서둘러 셔터를 내리려 할 때, 사막은 비로소 진짜 청구서를 내밀 것입니다. 50년 전 이스라엘이 결국 영토를 내어주어야 했듯, 오늘날의 제국 역시 호르무즈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가장 신성한 성역인 달러 패권의 일부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전쟁은 벙커 안에서 시작되지만, 언제나 주유기 옆의 영수증 위에서 마무리됩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은 50년 전의 비명을 기억하며, 오늘날의 가파른 유가 그래프 위로 다시 불어오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호르무즈 전쟁, 39조 달러의 청구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