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운전 생각보다 괜찮은데...?'
초보 운전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우선 3개월만 버티면 된다는 말이 있다.
운전이 3개월 정도 되니 슬금슬금 자신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시골이라서 좋은 점이 있으니, 차도 사람도 정말 없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나는 처음부터 출퇴근 시간과 야간 상관없이 거침없는 운전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아마 우리 동네 출퇴근 시간보다 서울 새벽 시간이 차가 더 많을 걸?
아무튼 이러한 시골의 축복으로 나는 초보 운전들이 끼어들기가 가장 무섭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앞 뒤가 텅텅 비어있으니 겁먹을 필요가 하등 없었다. 비보호 좌회전도 마찬가지.
이러니 내가 얼마나 으쓱 했겠냐고. 신나서 운전할 일만 생기면 먼저 하겠다며 달려 나갔지.
이쯤 되면 서울도 나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사실 내겐 또 다른 취미가 있으니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체험단으로 맛집을 가는 일이 잦은 편인데, 오래간만에 조금 거리가 있는 타 지역 체험단이 선정되었다.
무려 두 개의 시를 지나가야 있는 맛집!
평소대로라면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을 텐데 몇 개월 사이 나는 광식이에게 길들여져 있었다.
적응이라는 게 참 무섭다. 운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차의 편안함에 완전히 빠져들어버렸다.
어느새 내게 대중교통이란 타인의 체취와 소음에 파묻혀 실려가는 하나의 지옥도로 보였다.
'나... 어떻게 지옥철을 타고 장거리로 출퇴근했던 거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차키를 손에 들었다. 운전 연습은 많이 할수록 좋지! 안 그래?
목적지는 서울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 비하면 매우 번화한 도시로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아직 한 두 번 밖에 가지 못했던 곳. 그 한 두 번도 번화가에서 약간 빗겨나간 쪽.
"엄마랑 나랑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겠지?"
"넌 운전할 때 말이 너무 많아."
'... 엄마는 더 많으면서...'
자동차전용도로는 그냥 직진만 하면 돼서 정말 편안한 곳이다.
새로 바꾼 내비게이션이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문제없었다. (가끔 큰 소리로 광고를 읽어줄 땐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시내부터가 문제였다. 좁은 도로에 많은 차가 꽉 끼어있는 모습에 식은땀이 났다.
버스가 끼어들기를 시도할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 갑자기 창문 시야가 버스 옆면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란...
차와 신호가 하도 많으니 내비게이션의 안내도 헷갈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큰 도로를 벗어나 좁은 골목길로 이동하였다.
사람과 차가 적은 골목길에 오니 이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자동차한테도 기가 빨릴 수 있구나.
그렇게 1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원래 도착 예정 시간을 30분이나 넘긴 뒤였다.
식당에 자리 잡고 앉자마자 내가 한 일은 물 잔 엎어버리기였다. 손과 다리는 후들거리고 체력과 정신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음식을 먹는 내내 내 눈앞에는 잠시 후 마주할 어두운 도로가 펼쳐지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우릴 마주하는건 칠흙 같이 어두운 도로였다.
"... 집 가는 길이니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엄마.'
야간 운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건 시골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였다. 차도 차인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얼른 시내를 빠져나가 도로로 가고 싶은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중앙으로 걷는 걸까? 강아지들은 왜 이렇게 차량 쪽으로 달려오는걸까?
사람이나 강아지와 부딪칠까 두려워 느릿느릿 기어가듯 나아갔다.
'제발 비켜주세요. 제발 비켜주세요. 제발 비켜주세요.'
일방통행은 또 왜이리 많은지 나도 모르게 역주행 중인 경우가 반복되었다. 비상등을 깜빡이며 겨우 도로로 나오자 환호성이 다 나왔다.
탈출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큰 실수를 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차들은 상당히 짜증이 났을 거다.
새로 바꾼 내비게이션과 엄마의 오더가 충돌하여 운전 중 버벅거리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아니, 그냥 내비게이션에 갈 곳을 정확히 찍어달라고!!!"
"그냥 옆에서 오더 하는 걸 들으라니깐?"
“한쪽은 좌회전을 하라고 하고 한쪽은 직진을 하라고 하잖아!“
고맙게도 많은 운전자들이 초보운전자의 끼어들기를 봐주었다. 약간은 무리한 끼어들기일 수도 있을 텐데 속도를 줄여주었다.
한 번은 오른쪽으로 가자마자 주정차한 차가 있어서 다시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하였다.
경적 한번 없이 계속 끼어드는 걸 양보해 준 뒤차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또 한 번은 숄더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옆 차와 거의 충돌할 뻔하였고 깜짝 놀라 다시 원래 차로로 돌아왔다. 진짜 미안해~~~!!
많은 차들이 끼어들기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엄마와 나는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전국을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차들이 엄청나게 봐주던 거였어.
그리고 다른 차들이 방어 운전을 잘해서 사고가 나지 않던 거였어.
차가 많은 도로에 나와보니 이제야 실력이 체감된다.
시골에서만 놀면 안 된다 시골쥐야. 서울쥐가 되어서 좀 더 운전을 연습하거라.
아 참! 그리고 비상등 연장 버튼을 구매해야겠다.
비상등으로 감사나 사과 표시를 하고 싶은데 초보다 보니 빠르게 누르기가 어렵다.
차에서 내려서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를 외칠 수도 없으니 비상등이라도 잘 눌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