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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은 날

엄마와의 외출

by 지우

게임처럼 차를 조작하며 넓은 세상을 달리는 자유로움.

여기에 실력이 느는 성취감이 더해져, 나에게 운전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내게 즐거움은커녕 차문을 열고 뛰쳐나오고 싶은 일이 생겼다. 엄마와 외출한 날이었다.


"미안해... 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못 갈 것 같아..."

"어... 괜찮아! 엄마랑 다녀올게!"

친구와의 약속이 취소되며 파국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친구랑 가거나, 그냥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예약해둔 식당을 가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는 했지만 운전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차와 비슷한 건물이 많아서 헷갈렸지만 이전과는 달리 어느 정도는 여유가 생긴 상태였다.

"여기 주차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여기 맞은편 건물만 됩니다."

엄마와 나 사이의 균열이 시작된 건 식당을 나서면서부터였다. 주차 관련 안내가 처음과 달랐다.


"그러게 그냥 차 빼고 다시 주차하라고 했잖아."

"아니, 직원 분께 물어보니 된다고 했었잖아. 내 잘못은 아니지."

주차에 대한 짧은 실랑이를 시작으로 서로가 예민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외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시 외할머니네에 들러서 짐 한 보따리를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천천히 쭉 직진해. 할머니네로 바로 들어가지 말고."

엄마는 남의 집에 들를 때는 맨손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항상 말했다. 이 말에는 나도 동의.

"엄마, 말로 하면 헷갈려. 어디 갈 건지 확실하게 정하고 네비게이션 찍어줘."

그렇지만 정확한 목적지도 없이 가는 건 비동의. 네비게이션 없는 운전은 상당히 불안하고 두렵다.


"아직 못 정했으니까 그냥 말 듣고 가라고."

"그럼 정차하고 목적지라도 확실히 정하고 가자니깐?"

엄마와 나의 언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운전해 본 사람은 안다. 말로 하는 오더는 대체로 두루뭉술하다.

그런 오더 아래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도로 위를 주춤거리며 불안정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저 앞 골목길로 들어가."

이 오더는 세 번 반복되었고, 세 번 모두 내 시야엔 골목길이 보이지 않았다. 난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주차된 차량에 가려진 좁은 골목길을 초행길인 초보운전자가 찾기란 싶지 않았다.

골목길을 지나칠 때마다 엄마의 고함은 커졌다.

초행길, 비 오는 거리, 신호등, 뒷 차와의 간격, 화난 엄마, 여기가 어디쯤이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으니 패닉이 오는 게 느껴졌다.

신호조차 흐릿하게 보일 때쯤, 비상등을 켜며 빈 상가 앞에 급히 차를 세우고 엄마를 내려주었다.


겨우 심호흡하며 숨 좀 돌리려는 찰나,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ㅇㅇ가게 앞으로 와."

메시지를 보자마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며 여기까지 온 지 알잖아. 가까운 거리인데 다시 걸어오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결국 네비게이션을 찍고 가게로 향하는데, 길은 여전히 복잡하고 어려웠다.

기껏 우회전하니 진입금지라서 후진을 하질 않나, 불법주정차로 꽉 들어찬 골목이 나오질 않나...

속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차 안에서 욕을 내뱉고 고함을 질렀다. 이렇게라도 쏟아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가게에서 엄마를 태우고 외할머니네로 향하는 내내 차 안은 고요했다. 분노가 극에 달하니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고 싶지도 않았는데 들고 올 짐이 많단 이유로 강제로 내렸다.

외할머니, 삼촌과 억지로 웃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감정은 어정쩡하게 가라앉아버렸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어려운 빗길 운전에 집중하다 보니 감정은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집에 돌아와 몸을 편하게 뉘이니 그때서야 죄책감이 피어오른다. 내가 엄마한테 너무 화를 냈던 게 아닐까?

그러다가도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죄책감과 분노라는 상반된 감정이 혼란스러워 잠이 오지 않았다.


확실한 건 다시는 엄마와 단 둘이 외출하지 않을 거다. 대중교통이면 모를까, 운전은 정말 안 되겠다.

나는 그때 정말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차가 편리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어떻게든 집까지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운전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온갖 상황을 살펴도 한 순간에 사고가 나는 곳이 도로이다.

그렇기에 조수석의 배려가 필요하다. 조수석에서는 말을 줄이고 차분하게 있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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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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