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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속죄]를 읽고

말이 죄가 되기 전, 나는 알 수 있었을까?

by 길고영

[속죄]를 읽었다.
심리극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펼쳐든 책이었다.
등장인물의 이름, 감정, 중요한 물건에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정독했다.
책을 읽는 동안엔 마치 사실에 기반한 회고록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최고의 심리극, 스릴러보다 더한 긴장이 있다"는 추천사를 떠올리며 읽은 이 책은,
직접적인 사건의 전개보다, 사건이라는 무대가 끝난 후 무대 뒤편에 선 인물들이
각자의 감정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반전을 위한 복선이나 사건 조작의 장치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이 잘못된 길로 빠질까 긴장했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뒤틀릴까 봐 초조했다.


1부에서는 브리오니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전말이 드러난다.
중간중간 그녀는 60년 후 작가가 된 자신의 목소리로 등장해,
이 선택이 얼마나 깊은 죄였는지를 여러 번 고백한다.
그의 고백을 따라가며 나는 세실리아의 고독한 결심,
에밀리 탈리스의 외면적인 침묵, 로비 터너의 억울함을 함께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로비가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장면에서 1부는 끝난다.


2부는 경찰에 끌려간 로비의 이야기를 훌쩍 건너뛰고,
전쟁터에 있는 로비의 하루하루를 그린다.
그가 왜 이 전장에 있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점차 알게 되고,
결국 덩케르크에서의 고단한 기다림 속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3부에서는 수련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의 시간이 그려진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 그녀는
어느 날 잡지사로부터 '거절 편지'를 받게 된다.
브리오니가 투고한 소설은, 내가 방금 1부에서 읽은 이야기와 아주 닮아 있었다.
이후 브리오니와 세실리아, 로비와의 만남과 작별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4부는 현재의 브리오니를 보여준다.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밝혀지는 반전은,
그동안 나를 조용히 옥죄어왔던 실마리를 풀어주는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책을 덮으며, 나의 지난날을 회고해 보았다.
나에게도 브리오니와 같은 나를 옥죄여오는 죄는 없는지,
나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한 말들이 없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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