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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사죄의 깊이. [목소리의 형태] 재관람

by 길고영

최근 감상한 다섯 작품 중 세 편의 감상문을 미사여구로 채웠다. 징이 되어 나를 울릴 줄 알았던 작품들은 꾕가리가 되어 요란한 소리만 냈다. 그래서 이번엔 충분히 나를 흔들 작품을 골랐다. 첫 관람 당시 이해를 포기했던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다시 본다.


첫 관람 때는 급발진하는 전개에 당황해 생각이 멈췄다. 이번엔 놓치지 않으려, 그 시작부터 집중했다.


고만고만한 또래 무리 속 쇼야. 그 앞에 청각장애를 가진 전학생 쇼코가 나타난다. 쇼야의 관심은 괴롭힘으로 변하고, 보청기 파손 사건으로 커진다. 결국 쇼야는 가해자로 낙인찍혀 친구들 사이에서 고립된다.


세월이 지나, 그는 수화를 배우고 쇼코를 마주친다. 사과의 마음으로 시작된 만남은 다른 친구 관계가 끼어들며 어긋난다. 쇼야, 한 발짝 더 쇼코에게 다가가 오늘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쇼코 그 끝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첫 관람 때 이해되지 않던 쇼코의 선택. 이제는 조금 알 수 있게 되었을까? 마음의 감기인 우울은 어떤 즐거움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마음으로는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감정.


쇼야 같은 사람들의 결심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위에 있는 사람은 손을 내밀 수 있다. 그리고 잡은 손을 놓을지에 대한 선택은 아랫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런 장면은 많은 작품에서 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의 결심. 어떤 결심이어야만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걸까?


그 질문을 품은 채 가족을 떠올린다. 여자친구인 나보다 가족과의 크리스마스를 당연시 선택하는 남자. 그런 진심을 나도 받고 싶었다. 강산이 바뀌는 시간은 어느샌가 나를 그런 진심을 흉내 내는 사람으로 바꿨다.


몇 년 후 다시 이 영화를 보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쇼코의 결심을 흉내 낼 수 있을까. 지금 할 수 있는 건 흔들린 나를 잡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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