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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100일동안100가지로100퍼센트행복찾기]

by 길고영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를 보고



남편과 사귀고 나서 우리가 처음 싸운 일은 이랬던 것 같다.

첫 번째 남자친구에게, 작년부터 갖고 싶어 하던 MP3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졸랐다.

조름과 만류의 밀당 끝에 남자친구는 백기를 들며 말했다.

“MP3는 사줄게. 대신 얼마나 오래 잘 쓰는지 지켜볼 거야.”


결국 그 MP3에는 금세 흥미를 잃었고, 나는 분리수거함에 몰래 버렸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한 편의 영화를 틀었다.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각 세대는 시대마다 서로 다른 문제를 품고 있다.

증조부는 히틀러 치하를 견뎠고, 부모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명확한 외적 위협 없이 풍요와 자유를 누리는 첫 세대다.


'과잉 선택'의 시대에 사는 폴은 맞춤형 AI 애인 ‘나나’를 통해 위안을 얻고, 숨겨진 욕망을 충족받는다.

그 모습을 보며, MP3를 분리수거함에 버리고, 새로 나온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던 날이 떠올랐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물리적 풍요 뒤의 공허를 안고 있다.

토니는 인정과 우월감에 집착하고, 루시는 내면의 공허를 쇼핑과 도둑질로 채운다.

폴은 결국, 자신이 추구한 행복이 타인의 설계에 따른 소비였음을 알게 된다.

MP3가 있음에도 핸드폰을 얻고 싶어서 부모님께 조르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폴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매일 하나씩만 가져와 살아보기’라는 내기를 시작한다.

진짜 자신을 보기 위해, 그는 발가벗는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도 내 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발가벗은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 앞에, 나는 멈춰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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