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아 이해가 어려웠던 영화를 다시 본다. [미스터 노바디]. 영화 [메멘토]와 달리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당시 [미스터 노바디]의 결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니모는 세 여자와 함께한 인생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산다. 애나, 엘리스, 진.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게 9살 어린 소년이 상상한 세계라 말한다. 그리고 이제 그 세계조차 닫힌다고. 여전히 어려운 결말이다. 감상문을 쓰며 영화를 되짚어보기를 먼저 해본다.
9살 니모, 어머니의 외도로 인해 한쪽 부모님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인다. 어머니와의 삶에서는 애나를, 애나와 함께하는 오직 당신만인 세상을 가진다. 아버지와의 삶에선 엘리스를, 하지만 엘리스의 죽음으로 인해 평생 그리워하는 세상을 가지거나, 엘리스의 히스테릭에 머무는 세상을 가진다. 엘리스와 맺어지지 못한 삶에선 진을, 엘리스를 잊으려 오직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공허한 세상을 가진다. 그리고 아마도 엘리스를 평생 그리워하는 세상 끝에 먼 미래까지 생이 머무는 삶까지 상상하기에 이른다.
한 번의 선택이 모든 가능성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다. 영화 상영 시간 2시간 20분. 이 시간 끝에 내가 발견한 건, [미스터 노바디], 아무것도 아닌 사람. 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오늘의 나 일까?
[메멘토]를 2번 보고, 이해되지 않아 유튜브 설명영상도 보고, 영화도 한번 더 보았다. 꽤나 어려웠던 메멘토에서 찾은 건 삶의 허무에 허우적 되지 않기 위한 새로운 동력이다.
삶의 허무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영화의 말투가 어린이의 희망찬이 아닌 영화. 중년의 사람이 그때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었는데 하는 말투를 보며 한 살이라도 어린 난 그의 허무에 빠지지 않도록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