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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카메라를 절대 멈추면 안 돼]를 보고

by 길고영

‘각 잡고 감상한다’는 기대/노동이 모두 필요한 활동이 있다. 도서관에서 DVD를 고르고, 빌리고, 감상하는 일. 그 활동에서는 꽤 오랫동안 만족감이 없었다.

주말 근무의 대체 휴무일인 오늘, 찜 목록 비우기의 일환으로 최근에 추가한 영화를 무심코 재생했다. 영화는 세 겹의 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그 겹마다 다른 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 겹에서는 단순한 감상,
두 번째 겹에서는 공감과 약간의 짜릿함,
세 번째 겹에서는 창작의 노고를 보았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검증된 영화를 보고 싶어 고른 작품이었다. 다행히 그때 봤던 감상 댓글이 기억나지 않아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는 목차 설명 없이 나를 끌고 들어갔다. ‘좀비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이 펼쳐지고, 연출이라 생각했던 세계가 실제로 벌어진다. 혼란스러웠다. 러닝타임은 한참 남았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다니? ‘이후엔 무엇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와 함께 두 번째 겹이 열린다.

이번에는 ‘좀비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촬영의 우여곡절, 각자의 욕망이 실현되는 장면들에서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일본 영화 특유의 따뜻함으로 마무리되는 앤딩을 보며, ‘가끔 일본 영화를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세 번째 겹은 실제 이 영화를 찍은 사람들의 메이킹 필름이었다. DVD 특전 영상처럼, 영화와는 또 다른 결의 현장감. 창작이란 얼마나 복합적인 과정인지를 새삼 느꼈다.

오늘의 감상은 찜 목록 정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여타 코미디 영화에서 얻지 못한 만족감, 예술 영화에서 얻지 못한 공감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이 영화를 통해, 오늘 하루를 ‘만족감으로 출발한 날’로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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